(참. 히브리어 성경; 창 4:2-5)
2b 양 치는 자였고(A) 아벨은(B), 가인은(B') 땅을 경작하는 자였다(A')
3 날들의 끝에 땅의 열매 가운데서 여호와께 제물을 가져왔다(C) 가인은(B')
4a 아벨은(B)가져왔다(C) 그도 또한(גם הוא)/감 후/ 자기 양 떼의 처음 난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4b 여호와께서 주목하셨다(D) 아벨과 그의 제물을(E)
5a 가인과 그의 제물을(E') 주목하지 않으셨다(D')
아벨은 양 치는 자였기 때문에(2b) 여기서 즉시 우리는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가인보다 먼저 언급된 아벨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목자로 택정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후대의 이스마엘이나 야곱과 같이 둘째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첫째로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담과 하와의 자식들을 소개할 때 아벨이 먼저인 이유입니다(2b).
그리고 제물을 가져온 행위에 관해서는 가인이 먼저 나오고(3) 그 다음에 아벨이 나옵니다(4a).
하지만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반대로 아벨이 먼저고(4b) 그 다음에 가인과 그의 제물은 주목하지 않으셨다고(5a)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גם'/감/'또한, 역시'입니다(4).
'גם'은 교차대조법이 사용된 이 본문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낱말이 쓰여진 이유가 있겠지요?
그것은 아마도 아벨이 제물을 가져온 행위가 가인의 행위와 동등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지만 겉으로 나타난 그 둘의 각 행위들 자체는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b)
하나님께서는 드려진 제물의 겉모양을 보시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열매보다 양의 새끼가 더 좋은 제물이 아닙니다.
예물을 가져온 행위자로 먼저 언급된 사람은 가인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주목하신 사람과 예물은 아벨과 그의 것이었습니다.
제물을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회에 대해 가인과 아벨은 동등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처음에 아벨을 구속하시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의 뜻 때문에 가인에게 불리한 조건이 주어지진 않았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어린양이시므로 아벨의 제물이 더 선호되었다면 가인의 제물을 보시지 않으신 것은 불공평한 일이 됩니다.
따라서 열매를 드린 가인의 행위 자체는 결코 비난받을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열매를 드린 게 무슨 죄겠습니까?
그러므로 아벨과 그의 제물을 주목하시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주목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행동의 결정은 하나님의 예정에 기인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창세 전의 주권적 선택과 섭리의 교리 역시 이 가운데서도 작동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눈여겨보지 않으신 이유는 그의 겉모습과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의 중심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을 먼저 죽이지 않고는 자기 형제를 죽일 수 없습니다.
가인은 살인 행위 이전에 이미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적대한 죄악을 범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바라보지 않으셨고 제물을 드려도 쳐다보시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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