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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ελετάω 조심하다 애쓰다 묵상하다/창세기

"믿음의 제사를 드린 아벨"(창 4:4)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유로운 반응으로 행동을 했습니다. 

둘 다 자유의지로 행동한 것입니다. 

제물을 드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회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은 동등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아벨을 구속하시기로 결정하신 뜻으로 인해 

가인에게 더 불리한 조건이 주어지진 않았던 것입니다. 

열매보다 양의 새끼가 더 좋은 제물이 아니지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어린양이시므로 아벨의 제물이 더 선호되었다면

가인의 제물을 보시지 않은 것은 불공평한 일이 됩니다. 

따라서 열매를 드린 것은 결코 가인이 비난을 받을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의 제물이 다른 결과를 낸 것은 오직 믿음의 유무였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음을 강하게 드러내는 중요한 표현이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4)할 때, ‘아벨 그도 또한’입니다. 

또한 아벨은 양 치는 자였기 때문에(2), 

우리는 바로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여기서 아벨은 가인보다 먼저 언급되었습니다. 

그는 선택 받은 사람이었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제물을 가져오는 일에서는 가인이 먼저 언급됩니다(3). 

아벨도 가인과 마찬가지로 제물을 가져왔습니다. 

제물을 가져오는 일에 두 사람은 동등한 기회를 부여 받았지요. 



가인이 하나님께서 눈여겨보시지 않은 제물을 가져온 것은

단지 그가 불신의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도 자기 안에 계신 하나님을 먼저 죽이지 않고는 형제를 죽일 수 없습니다. 

가인은 살인의 행위 이전에 벌써 하나님을 대적한 죄악을 범한 것입니다. 

그들이 행해야 했던 일은 단순히 첫 번째 소득물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제물(재물이 아님)을 바치는 것입니다.  

아벨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품지 않고

그가 명하신 말씀을 따르지 않고서

생각에 순종이 없이 제물을 드렸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실 리가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에 대해 사람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반응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자유 의지에 따른 행동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바라시고 말씀을 통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스스로의 의지와 바람대로 행동하는 반응을 하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한 자는 영생으로 악을 행한 자는 멸망으로 심판하십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행위로써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행위가 선한지 악한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그 행위 안에 믿음이 있는지의 여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생각의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이 말씀을 믿는 심중에는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무한하신 능력과 선하심을 아는 

지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러하신 분으로 알지 못했다면

부모인 아담과 하와와 뱀에게 내리신 저주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절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벨은 하나님께서 선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도 그것을 바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죽음의 저주를 내리시는 것에서 그치시지 않으시고

그것을 뛰어넘는 큰 은혜를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