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율법'(시 1:2)이라 하니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된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열매를 맺고 마르지 않게 된 것은 그 나무의 의지나 노력 때문이 아닙니다. 나무가 뭘 했습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하였으니 누군가 그렇게 좋은 곳에 심은 것입니다.
이는 그 나무 밖으로부터 온 은혜입니다.
사람 안에서 나온 어떤 것 때문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맺어주신 언약에 따라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이유는 율법을 받아서가 아니고 은혜를 받아서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자신의 생각 또는 어떤 사람을 우상처럼 섬기는 것)은 사신(악하고 허탄한)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삼상 15:22-23a)
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공의를 행하고, 긍휼을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미 6:8b)
나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입니다.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율법'을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 율법으로 오해해선 안 됩니다(참. 히 7:19).
여기서는 '가르침'과 '계시'를 뜻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따라서 만일 어떤 보상을 바라고 율법을 지키는 어리석음이 내게 있다면 속히 내려 놓아야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율법의 가르침(교훈/교리)을 사모할 때에라야 그것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때에 따라 열매를 맺으며 잎이 시들지 않는 것처럼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3).
형통이란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 땅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 아니고,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는 우리의 모든 일에서 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루어짐을 뜻합니다.
제대로 물을 얻도록 심겨진 나무는 시들지 않으며 제때 풍성한 열매(믿음의 행위/선행)를 맺게 될 것입니다.
나무는 스스로 그 자리에 가서 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생명수(말씀의 깨달음/성령 충만)를 얻게끔(성령 하나님의 사역)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잘 심겨진 참으로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 15:16)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오직 주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사람들이 복이 있는지를 산상수훈(마 5:1-7:29; 눅 6:17-49)으로 제일 먼저 가르치셨습니다.
그 여덟 가지 복의 가르침이 제자들 신앙의 기본이 되었듯이, 이 시 1편에서 말씀하신 복 있는 사람에 대한 교훈도 마찬가지로 뒤의 모든 시들의 토대가 됩니다.
우리는 그 모든 시들을 계속해서 믿음으로 읽고 조용히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그리스도인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교제하며 주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참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사람은 아무리 완벽하게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수준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악된 성품 때문에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참 하나님께서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참 사람으로 오시고 우리의 죄값을 스스로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참. 롬 8:3-4).
그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습니다.
우리의 강한 의지나 신념이나 끝없는 노력이나 선한 행실들 등등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오직 나무 형틀 위에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과 순종, 즉 주님의 온전하신 삶의 의와 그 공로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행함이 아닌 주의 행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선언하셨음을 알고 입으로 시인합니다(참. 롬 10:9-10).
이와 같이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주께서 나무 위에서 이루어 주신 구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의 공로에만 온전히 의존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며,
바로 이것이 이미 이 땅 위에 우리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에서 언약 백성이자 주의 제자들로 행복하게 사는 형통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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