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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ελετάω 조심하다 애쓰다 묵상하다/시편Ⅰ

#3 절망 속의 노래

무려 사 년을 공들였습니다. 이 치밀한 반역을 완성하기까지(삼하 15:7).

이스라엘 국민의 여론을 조작해왔고 자기 아버지 다윗을 철저히 기만했습니다. 그의 가장 탁월한 모사 아히도벨도 끌어들였지요.

그러나 다윗은 반역의 기미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정보가 차단되어 어떤 음모의 속삭임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나라가 압살롬에게로 넘어갔다는 갑작스런 전령의 말을 듣게 된 다윗.

예루살렘 성에서 신하들에게 다급히 외칩니다.

 

일어나 도망가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어서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삼하 15:14)

 

그래서 도망을 하게 되는데 수많은 병사들을 이끌어 쳐들어오는 아들에게서 도망하는 심정이야 어땠을지 알만은 하나, 그래도 찾아보니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삼하 15:30) 

 

가슴이 찢어집니다. 깊은 슬픔이 있습니다.

하나님, 제게 적들이 어찌 그리 많습니까? 제 자식과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적대하며 일어섰습니다. 많은 이들이 저에 대해 말합니다.

"그에게는 하나님 안에서 구원이 없다."

하나님께 구원받지 못하면 끝장이겠지요.

큰 곤경에 빠진 다윗은 누가 봐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 듯한 시절을 보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셀라*

'셀라'(סלה) 잠시 멈춥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이 고요함 속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말씀의 장엄함을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깨달음을 만끽하며 소리 높여 찬송을 올릴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므로 모든 남자와 여자가 다 적이 됩니다.

이는 소름돋는 일이지요. 남혐이고 여혐이고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나왔기 때문에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그 책임을 신께 돌리지요.

신은 없거나 인간에게 무관심하다고 큰소리칩니다.

그러나 설령 그렇게 모두가 적처럼 느껴진다 해도 우리는 주어진 믿음에 매달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어린아이들 같은 우리들의 모습을 비웃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눅 18:17) 

 

그때 다윗도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바로 깨닫습니다.

주께서는 은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저를 위한 방패시며, 제 영광이시며, 제 머리를 높이시는 분이십니다. (3)

 

많은 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하나 주께 부르짖으니 그것이 벌써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3, 원문에는 있음), 그는 이 치명적인 현실에 역행하여 신앙으로 일어설 기미를 보이는 것입니다. 

 

제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주께서는 그분의 거룩한 산에서 제게 응답해주십니다. (4)

 

그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원수 같은 사람들이 비방하며 떠들어대도 도리어 소리를 높여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그러자 성산의 주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십니다. 성산이란 당시 법궤가 있던 시온 산이 가리키는 실체인 하늘의 성소를 가리킵니다.

급히 예루살렘을 떠나느라 미처 법궤를 가지고 챙기지 못했지만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가 성소에서 즉 그의 몸(전인)으로 예배를 드려 주를 만날 때마다 그가 어디에 있든지 그에게 응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의 시온에 계시나 성령으로 즉시 우리에게 응답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하나님의 말씀만 확실히 알면 됩니다.

개인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은 참된 지식으로 모두 다 해결됩니다.

하나님을 나의 방패시며 나의 영광이시며 나의 머리를 드시는 분(3)으로 아는 신앙 지식 앞에서는 세상이 무너지는 환난 가운데서도 걱정이 없습니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면(4) 다 되는 줄 믿는 사람 또한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늘 시온의 주님께서 그에게 응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셀라. 그는 또다시 깨닫습니다.

'제가 눕고 자고 깨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를 대적하여 주위에 늘어서 있는 만군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일어나십시오. 나의 하나님, 저를 구원해주십시오. 참으로 전에도 주님께서 제 모든 원수들의 뺨을 치시며 악인들의 이빨들을 부러뜨리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으니 주님의 백성에게 주의 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셀라 (5-8) 

 

얼마나 안심이 됩니까? 만인이 우리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6).

 

나의 하나님, 저를 구원해주십시오. 주님께서 내 모든 원수들의 뺨을 치시며 악인들의 이를 꺾으셨습니다. (7)

 

이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면서 이제도 그와 같은 은혜를 받기를 구한 것입니다.

그 전에도 내 편은 아무도 없었고 다만 저 혼자뿐이었지만 그때도 저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해주셨으니까요. 그러니 이제도 그렇게 해주실 줄 알고 안심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 127:2b)

 

믿음이 큰 사람은 핍박과 환란이 커도 근심하지 않고 평안히 자고 일어납니다. 이 저주받은 땅 위에서도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일도 임재하실 것을 이미 오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으며 이 평안이 내일도 이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주심을 믿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내 원수(7)란 단지 나를 치러 달려드는 자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수천 수만의 원수들은 사실 우리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추악하고 퇴폐적이고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생각들, 

기도드릴 동안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비열하고 야비하고 탐욕적이고 경박하며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생각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 악한 생각들이 지금도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서 몰아내려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마귀라 불렸지만 이제는 과학적이거나 심리적인 용어들로 묘사되는 그런 것들로부터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시려는 분은 누구십니까?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8)

 

이렇게 기도로 마무리 됩니다.

자기에게 닥친 환난 속에서 그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주의 백성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구원이 주님께 있음을 확신하니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절망 속에서 유일한 구원의 노래가 되시는 말씀 안에 있습니다. 셀라 

 

 

*셀라(סלה)
1) to lift up, exalt 1a) Selah 1a1) a technical musical term probably showing accentuation, pause, interruption// (의미 불분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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