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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ελετάω 조심하다 애쓰다 묵상하다/시편Ⅲ

#80 실패의 이유

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5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6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보이는 일이 이렇습니다.

그토록 기도했건만 아직도 진노를 풀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눈물 마를 날이 없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이웃들의 시빗거리가 되게 하시니 원수들도 함께 비웃습니다.

주께서 우리 기도에 노하시므로 이토록 우리 마음이 상했고 주변 사람들조차 우릴 보고 비웃는 것 아닙니까?

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이제 기도하는 사람은 포도나무(교회)의 실패를 말합니다.

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9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

이러한 일이 인류 구속사 안에서 계속 일어납니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라고 기도하는데, 돌아오소서라고 한 것은 굉장히 무례하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마음을 돌이키라고 하시는 단어(שׁוּב)/슈브/'되돌아오다, 회복하다' 그대로 돌려

회개했지만 진노를 멈추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한테만 뭐라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도 이제 그만 하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 하나님께서 교회를 떠나신 적이 있습니까?

틈만 나면 하늘의 하나님을 떠나 땅 위의 썩어질 것에다 마음을 두고 마는 게 우리들입니다.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아들)니이다

여기서 줄기는 포도나무와 대구를 이룹니다. 포도나무 그 자체죠.

그리고 15절에 '가지'로 의역된 낱말의 원어는 아들’(בֵּן)입니다.

그는 주 하나님 오른쪽에 있는, 곧 주님을 위해 강하게 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2편)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우편에 있는 사람(110)입니다.

 

우리는 요 15:1에서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정리하면 그리스도께서는 포도나무 그 자체이시고 그 안에 접붙여진 가지들이 포함된 것입니다.

결국,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씀은(엡 1:23, 5:23; 골 1:18, 24) 그리스도께서 내가 곧 교회다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교회다.”

물론 여기서 교회가 세상에 속한 교회들을 가리키는 건 아니지요.

하나님께 속하여서 실제로 하늘과 땅에 걸쳐 존재하는 참 이스라엘을 뜻합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요 1:47)

"보아라,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곧 교회시라면 틀림없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포도나무요 참 이스라엘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10:7)라는 말씀도 하셨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24:44)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에 나타난 바와 같이 땅에서 반복되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도발적인 기도는

그것이 아무리 회개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해도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주님께서 교회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시는 것만 같습니까?

 

우리 마음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교회의 진심은 어디에 있는가?

보세요. 2절에 나오는 에브라임, 엊그제 본 시 78편에서 뭐라고 되어있었는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9 에브라임 자손은 무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67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기도했지만 마음은 하나님께 두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나도 참전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그 광야에서 적국의 포로가 되어 버린 상황이죠.

하나님 나라의 적국은 어디입니까? 사탄의 나라죠. 세상입니다. 거기서 고통 받으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종이 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럴 의도로 기도하지 않았죠. 세상 잘 되고 달콤한 복들만 많이 받으려 했을 뿐.

 

그래서 이 시편이 실패한 포도나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똑같은 인간의 시선으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마 자기 연민에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느끼기에 나는 하나님께 동정을 받아 마땅하다.

그 포도나무,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곧 요셉으로 불린 백성 이스라엘은 끌려가서 겪게 된 포로 생활에서 결코 돌아오지 않을 북쪽 열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나라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망했고, 세상에 속한 나라에 복속되었으며, 또한 말씀 멸시한 죄를 회개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그들이 바라는 구원과 회복도 없게 된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소명을 저버린 교회를 가리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지 주께서 언약을 어기시고 교회를 버리시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 배교자들의 죄악 마저도 선한 것으로 바꾸시니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지파로 대표된 이스라엘과 그 후손들은

시 78편에 기록된 수많은 악에 더 큰 죄를 더하여 주께서 심으신 그리스도까지 죽였지만,

오늘 시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그 힘 주신 아들의 고난으로 온 교회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1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이스라엘의 살아계신 목자 하나님께서는, 즉 교회의 살아계신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양 떼를 인도하시며

주께서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실 때 

그룹은 언약궤를 지키는 천사들이죠? 말씀 중에 계시고

, 그 성령의 광채를 그들에게 비추십니다.

 

2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을 받았고, 그 땅에 살던 백성들은 포로가 되었습니다.

교회에 세상의 영이 들어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 4:3)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으로만 주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셔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이키시면, 우리 마음을 인도하시면 우리가 구원과 평강을 얻으니

이는 주의 얼굴 광채가 참된 교회에 비추어지는 은혜를 입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4)

말씀이신 하나님, 그리스도께서 이같이 온 하늘과 땅에서 가장 선하신 아버지의 뜻을 온 교회에 이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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