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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ελετάω 조심하다 애쓰다 묵상하다/시편Ⅱ

#72 진리의 지식

'A Psalm for Solomon' 이 시 72편은 표제에 ‘솔로몬의 시’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은 ‘솔로몬을 위하여’ 다윗이 기도로 지은 시입니다(참. 시 72:20).

그러나 그에 앞서 이 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말씀입니다.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주의 은혜의 해’란, 여호와의 은혜를 '받을 만한' 해, 해방의 '희년'(레 25:10, 70인역), 즉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온 때'를 뜻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참 생명을 얻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1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מִשׁפָּט)/미쉬파트/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צְדָקָה)/체다카/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여기서 '왕'과, '왕의 아들'로 표현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2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צְדָקָה)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מִשׁפָּט)로 재판하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의'로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3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산(הַר)/하르/과 작은 산(גִּבעָה)/기브아/'언덕'들은 여기서 비옥하지 않은 ‘궁벽한 곳’을 의미합니다.

무한하신 그리스도의 의(צְדָקָה)로 말미암아 그런 척박한 땅에서도 열매가 풍성하게 나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의는 아버지의 한량없는 사랑을 드러냅니다.

 

4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שָׁפַט)/샤바트/'재판하다, 다스리다'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사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하늘의 크고 흰 보좌 위에 앉으신 왕께서는 주를 두려워하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5 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왕이신 주의 다스리심을 받는 교회는 어느 장소에 있든지 하나님의 의가 해처럼 빛납니다.

그 빛은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교회 전체에 하나님의 이름을 비추어서

낮이든지 밤이든지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고 예언이 나옵니다.

6 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내리리니

7a 그의 날에 의인이(צַדִּיק)/찻디크/'의로운' 흥왕하여(פָּרחַ)/파라오/'싹트다, 봉오리를 맺다'

이 구문의 뜻은 '의가 싹트다'(צדיק ורב)입니다. 의가 싹이 나고..

7b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른다’는 것은 영원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만일 그 의가 연약한 인간의 것이라면 어찌 그로 인한 평강이 영원할 수 있겠습니까?

8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것입니다.

가뭄 중에 내리는 단비와 같이 주께서 친히 이 땅으로 내려오셔서 그의 다스리심으로 온 백성을 구해주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기록 이후 약 400여 년 뒤에도 왕의 구원과 통치에 대한 예언이 있었습니다.

슥 9:10b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그 후로 다시 약 500여 년이 지나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습니다.

또 그 후로 약 2000여 년간 복음이 전파되면서 그의 다스리심이 거의 땅끝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조금 남아 있지만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벧후 3:10b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계 9: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9 광야에 사는 자는 그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여기서 ‘광야’는 성도가 살아가는 장소를 말하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은 곳을 의미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북한이니 한민족으로서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그곳도 복음의 은혜로 뒤덮일 날이 조만간 올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주의 날'이 이르니까요. 

10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그러므로 이처럼 그런 나라와 민족들이 만왕의 왕께 무릎을 꿇을 것이며 이 예언의 말씀대로 인류 구원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12-16절은 3-4절의 내용을 반복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노래에는 후렴구가 있어서 반복을 하죠. 이 시에서도 중요한 내용을 강조하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는 건지시고, 구원하십니다."

12-14a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그들의 생명을 압박(תֹּךְ)/토크/'권리 침해' injury '억압, 압박' oppression과 강포(חָמָס)/하마스/'폭력, 난폭, 부당행위, 불법, 악'에서 구원하리니

그리스도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그의 다스리심으로써 구원해 주십니다.

성도는 보통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악인에게 지배당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여 악인의 지배를 받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거나 들었어도 눈과 귀가 멀어 아직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둘째, 땅의 것들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주 하나님을 찬송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며 살기 때문에 악인의 압제와 박해를 받습니다.

언제든지 악한 정치는 인간의 자유를 박탈합니다. 그것은 주의 백성들을 노예로 여기고 지배하려는 악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괴변으로 사람들을 속이며 이런 주장을 합니다.

'성도는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 '교회가 성경(정경)을 정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위가 성경보다 더 높다'...

괴변들입니다. 저런 생각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지도자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전체주의 사상을 낳았습니다.

성도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땅의 교회(성도)는 과오를 범하나 그리스도이신 주님의 영원한 계시에 순종합니다. 

하지만 저런 말을 하는 자들은 진정한 왕을 애써 무시하고 그 자리를 탐하는 것입니다. 저 교황주의자들처럼 자신의 지배를 정당한 것으로 꾸밉니다. 

인간이 조직(교회/국가/단체)를 위해 존재하고, 조직이 최우선시 되어야 하며, 그러니 거기서 나온 것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스탈린도, 히틀러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그저 독재자의 괴변일 뿐입니다. 

 

14b-16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산 꼭대기의 땅에도 곡식이 풍성하고 그것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로다

아까 3절에서도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주님의' 무한한 의로 말미암아 산 꼭대기의 땅이나, 산들이나, 작은 산들에도, 그런 척박한 땅에도, 풍성한 곡식과 열매를 허락해 주십니다. 그야말로 주님의 한량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땅의 끝에 매달려 있는 모든 사람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될 것입니다. 그들이 생존할 것이며 주께 기도하고 종일 찬송을 올려드릴 것입니다.

저 척박한 곳, 극악한 자들의 땅에 택하신 백성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도 어쩌면 한 사람 엘리야 같은 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곳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칠천 명도 있지 않겠습니까?

또 하나님께서는 영원 중에 택하셨지만 아직 땅의 교회에는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있지만 저 원수들 중에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모태 신앙인은 아닙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특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경건 생활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한 일이며 참으로 우리 구주께서 받으실 만한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왕이시다'라는 진리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참. 딤전 2:1-4). 


17-20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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