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
허황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무익하다는 것을 네가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았느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된 것을 네가 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하신 성경이 성취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었다(창 15:6; 사 41:8; 대하 20:7).
너희가 아는 대로,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다.
이와 같이 기생 라합도 사자들을 영접하고 다른 길로 가게 하였을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았느냐?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다.
(약 2:20-26)
믿음은 환상이 아닙니다. 믿음에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반드시 따르기 때문에 믿음의 실재를 깨닫게 됩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눈부신 환상같은 것을 좇다가는 미혹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환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소망의 실체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히 11:1).
그 실체는 이 땅의 것을 바랄 때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에도 믿음의 족장들이 땅의 것들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았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땅에서 수고하는 동안 하늘의 복된 삶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야곱이 이생에서는 아무짝에도 쓰지 못할 장자의 권리를 얻기 위해 애를 쓰고
죽기 직전에 하나님께 주의 구원을 기다린다고 기도한 이유는
죽음이야말로 새 생명의 시작임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종착지라면 의인과 악인이 다를 것 하나 없습니다.
죽음 이후에 기다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둘은 전혀 다른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땅의 것들은 영의 양식이 되지 못합니다.
세상에 좋은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영화들도 있고, 또 여러가지 우리의 시선을 잡아 끄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런 것들 속에서 복음의 내용 중 일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메아리일 뿐 진리 자체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을 살찌우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주님의 말씀인 줄 알고서 환상을 붙잡고 있다가는 오히려 쇠약해져 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이 믿음을, 곧 사라져 버릴 허무한 안개와 같은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실제로 그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반드시 행위를 동반하기에 사람의 선행이 하나님의 순전한 선물인 것입니다.
만일 이 믿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실재가 아닌 것으로 여긴다면 즉시 허무에 사로잡히고 말 것입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꿈속에서 먹는 음식도 진짜 음식과 매우 비슷해 보일 것이고 마치 실제로 먹는 것과 같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런다고 해도 실제로 영양분을 얻을 수가 없는 까닭은 그들이 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처럼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마 26:40)
우리는 성경을 통해 순종의 행위가 믿음의 열매이지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런 선한 행위는 언제나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믿음을 행위와 분리하려 해선 안 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람이 믿음(의 행위)로 의로워지지, 행위와 분리된 마음으로만 되지는 않습니다.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한 믿음의 행위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않았습니다(히 11:31).
히브리서의 이 구절이 '믿음으로'라고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믿음 안에 너무나 당연히 행위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사신들을 맞이하고 다른 길로 그들을 내보낸 행위로 라합이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믿음대로 행하는 것보다 주님을 닮을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의 선한 행위(믿음)를 사랑하십니다. 그들의 믿음(행위)은 참된 회개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행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닌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사랑과 자비에 의해서만 행위, 곧 믿음에 따른 상급이 예비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겠다.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으니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아 주겠다." (계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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