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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ελετάω 조심하다 애쓰다 묵상하다/마가복음

막 1:21-28 "권위 있는 새 교훈"

1: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마가는 주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서기관과 달리 권세 있게 가르치시는 바로 그 자리에

때마침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자가 있다고 진술합니다.

마치 그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이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그 자리에 있기로 예비된 것처럼 말이죠.

 

이 말씀이 생각납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이니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2-3)

맹인이 맹인으로 난 것이 자신이나 부모의 죄로 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고 그렇게 된 것이라는 주님의 해석은 충격적이고 새롭습니다.

 

마가복음 1:23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오셔서 권세 있게 가르치실 때,

바로 그때에 더러운 영 안에 있는 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분명히 기록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시려는 계획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의 '마침'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바로 그때'라는 뜻으로 이해가 됩니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자, 사람들은 모두 놀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묻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일을 목도하니 도대체 이 일이 무슨 일인가 놀라며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이 놀라운 것은, 그의 가르침이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당에서 가르쳤던 다른 사람들은, 비록 그 말이 화려하고 뭔가 대단한 학식이 있는 것처럼 보였어도

악령에게 명하여 떠나가게는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권세가 있는 새 가르침'이라고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영적 권세가 있습니다.

이 이적을 행하시기 전에도 사람들은 주님의 가르침에서 영적 권세를 느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능력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 자체가 주님의 능력입니다. 말씀이 곧 능력이기에 그 가르침에서 권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씀이 곧 능력인 존재는 온 우주에 그리스도 한 분 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어떤 누구도 그 말하는 바가 곧 능력인 존재는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력 그 자체이면서

나아가 주님께서 곧 말씀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