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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ελετάω 조심하다 애쓰다 묵상하다/마가복음

막 2:13-17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주님께서 레위를 부르시고 그에게 보여주신 모범, “나를 따르라”하시고 따르도록 본을 보이신 행동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죄인으로 여길 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라면, 나는 그 누구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세리와 죄인들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내가 잘하고 있고, 나는 깨끗하고, 나는 올바르고, 나는 하나님 앞에서 참되다고 느끼는 것이 사실은 비참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옳다고 생각하는 의식’에는 소망이 없으며, 오로지 그들을 멸망으로 내려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겨진다면, 그것은 교만이고 죄악입니다.

 

우리들도 이 교만과 악으로 타인을 정죄합니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례를 행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의 교만을 부수시기 위해서 나무에 달리셨는데도 그런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입고도 우리는 너무도 쉽게 ‘교만’으로 자신을 채웁니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에게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자기를 부인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우리가 죄악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악합니다.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주님의 고치시는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정죄합니다. 그 교만이 어디서 나옵니까?

자신이 남보다 낫고, 깨끗하다는 잘못된 ‘우월 의식’이 우리 안에 꿈틀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들과 죄인들을 정죄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와 반대로 남을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병든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의롭게 여기며 심판자의 자리에 앉아 남을 손가락질하고 경멸하면서 정작 자신이 멸망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은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이 벗겨진다면, 주님을 처음 만나기 전의 그 부끄러운 맨몸만 남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레위에게 친히 오셨습니다.

그리고 레위에게 하신 말씀을 지금 우리에게 살아있는 생생한 말씀으로 우리 귀에 들려주십시다.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그리고 부르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