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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ελετάω 조심하다 애쓰다 묵상하다/창세기

#5 족보의 의미

(창 5:4-5)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세기 5장의 족보에서는 셋째인 셋이 아담의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 19:30)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를 위해 룻기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예수님의 계보에 오른 이방의 여인입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기생 라합이 유다 지파의 살몬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었습니다(수 2장).

그러니 룻과 보아스는 모두 온전한 히브리인이 아니었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오기 전에 이미 거기 살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침공할 때 구원받은 이민족 여인인 라합에게서 난 보아스와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는 신앙을 가진 이방 여인의 만남과 결혼. 

 

게다가 이것은 율법대로 ‘기업무를 자’(고엘)의 책임에 따라 계대 결혼을 한 것입니다.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계대 결혼이란 죽은 형제에게 자손이 없을 경우 그 대를 이어주기 위해 죽은 자의 남은 형제가 미망인과 결혼하는 것인데요,

이때 그 결혼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는 법적으로 죽은 형제의 자손이 되어 '그 죽은 자의' 모든 권리를 이어받게 됩니다.

따라서 룻이 보아스와의 결혼으로 낳은 아들 오벳은 법적으로는 보아스가 아니라 먼저 죽은 말론(엘리멜렉의 아들)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룻기 4장의 계보에는 분명 오벳의 아버지가 보아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었고,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가 족보에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계보는 단순히 혈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족보는 혈통에 의해 율법을 따라 엘리멜렉에서 말론으로 말론에서 오벳으로 이어졌지만 그 법적인 족보는 성경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족보는 살몬과 라합에게서 보아스와 룻으로 그리고 오벳으로 이어지는 복음적인 족보이며 믿음의 계보입니다. 

즉 성경은 인간의 피로 이어진 히브리 민족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택하셔서 그리스도의 피로써 믿음의 계보에 들어온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 9:8)

 

신약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로 시작됩니다(마 1:1).

이는 예수님께서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예수님의 계보에 들어있는 선조들은 유대인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이방인인 라합과 룻도 있고 심지어 악한 왕들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람, 웃시야, 아하스, 므낫세 등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보에 큰 죄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역설적으로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 사실이 복음인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가 혈통 관계에 종속되지 않고 인간의 의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아님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 율법에 따라 인간의 의나 합법적인 혈통으로써만 가능한 것이었다면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을 잘 해야 합니다. 그러면 과연 내 혈육에게 대대로 믿음이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노력으로 되는 일일까요?

물론 우리는 진정 대대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주님께서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럼 참으로 복되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복은 언제나 내가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복의 근원은 주님이신데 그런 일을 노력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사실 믿음의 계보는 예수님 말고는 전부 죄인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대표자인 첫 사람부터 죄인이었으니까요. 

분명 예수님께서도 "나는 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b)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오직 은혜'의 복음 진리에 반하여 혈통적인 족보를 강조한다면 그것은 율법적이고 세속적인 것입니다. 

노력하면 대대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의인이 될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관하여 사람은 믿든지 믿지 못하든지 둘 중 하나이며,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이 전체 성경의 계보들 가운데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인간의 의지나 결단이나 노력 같은 것들로 인해서 변동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복에 관해서 좀 더 알기 위해 다시 창세기를 보겠습니다.

(창 5:1-2)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주시고 사람이라 부르셨습니다.

그 복이 아담에서 노아까지 또 아브라함에서 다윗으로... 그리고 마침내 우리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히브리 민족은 아니지만 아담의 후손이고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거부할 수가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이며,

또한 반드시 함께하시겠다는 사랑의 언약에 따른 생명의 은총입니다.

그러한 복을 받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 곧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복은 어떻게 우리에게 임하게 될까요? 노력하면 될까요?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겠지요. 

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기 때문에 우리는 부지런히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찾는 것도 노력이지 않느냐?

그 노력을 우리가 할 수 있게 해주시므로 주님의 공로로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누구나 간절히 바라면 꿈은 꼭 이루어질까요?

기독교 신앙은 그런 미신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전으로 지어져 가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엡 2:22).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니까요. 

 

모든 사람이 주님을 찾지는 못합니다.

오로지 주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들만 주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를 찾지 않고서 오랜 꿈이 이루어지면 그 행복이 얼마나 갈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행복하다고 자신을 속일 수는 있겠지만 결코 자기 스스로 행복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은 자기가 스스로 복되다고 믿는 것이 아니고, 정말로 복을 받아서 행복한 것입니다.

복의 근원은 주님이시므로 주를 찾기 위해 날마다 열심히 노력할 수 있게 하여 주심에 감사하면서, 

진정으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며 모든 선한 일은 오직 주님께서 하셨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막 12:27a)

애초에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예정된 복의 근원이셨고, 만물보다 먼저 계셨던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교회의 머리이셨습니다. 

따라서 첫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어도 창조주이시자 만유의 주께서는 벌써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원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참으로 얼마나 그 택하신 백성들을 사랑하셨으며 그 사랑은 우리에게 어떻게 임하여 왔는지요.

우리는 이 아담의 계보(창 5장)를 통해서

주께서 사랑하셔서 복 주신 이들이 죽고, 죽고, 다 죽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이기셨으므로

지금도 살아 있는 그들과 영원 중에 함께 계시며

이제 복된 우리와도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진리의 지식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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