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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ελετάω 조심하다 애쓰다 묵상하다/시편Ⅲ

#75-3 오직 한 나무

(시 73: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감은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뜻이죠. 놀랍게도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모두에게서 가장 가까운 장소에 계십니다.

(시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우리에게 오셔서 머무르시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며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시 75: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하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의 수많은 행적들을 사람들이 전파하고 있는 이 범상치 않은 일은 오직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익히 전해 들은 바와 같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그들을 애굽인의 손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시는 그분께서는(참. 삼상 10:18)

어째서 이스라엘을 마라와 같은 역경으로 인도하여 그들을 시험하십니까?

 

그것은 오직 한 나무를 가리키시기 위해서입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חֹק)/호크/'규정, 규칙, 의무'와 율례(מִשׁפָּט)/미쉬파트/'정의, 재판, 주의 판단'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출 15:25).

그런데 그때는 아직 율법 계명을 내려주시기 전이었으므로 그 법도와 율례는 다른 어떤 규정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주께서 그의 백성들을 이같은 역경으로 인도하여 시험(נָסָה)'고난을 통하여 시험하다'하시는 원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순종해야 할 의무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신 4:34)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세상)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따라서 그 법도와 율례란 이 메마른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에게 반드시 필요한 주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시내산 이전에 벌써 교회에 은사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의 백성들을 저 어둡고 황량한 세상에서 구별하셔서 이끌어내시고 역경을 통과하게 하시며 비로소 한 나무를 가리키시는 이 시험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은사는 그럴듯한 다른 어떤 것들도 아니고 오직 한 가지로 주 하나님의 말씀, 곧 참 사랑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마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다음 처음으로 진을 친 곳입니다(출 15:22-23, 민 33:8). 그곳의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출 15:23-24). 

(출 15:25a)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오늘날에도 사람들 가운데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만 있었죠.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직분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모세를 원망한 것은 사실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당대의 선지자였을 뿐 아니라 과거의 아벨과 마찬가지로 장차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한 나무(עֵץ)/에츠/'나무, 목재, 조각목'를 물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나무는 물 위로 떠오릅니다. 하나님께서 가리키신 한 나무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물 위에 떴고, 그러자 마라의 쓴 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에도 사람이 의지할 분은 오직 주님뿐인데, 이 유일한 구원의 방주만은 거절하면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많은 사람이 큰 물 위에서 다른 이상한 것들을 붙잡고 불안에 떨지 않습니까? 심지어 자기 스스로 헤엄쳐 땅을 밟으려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옛적부터 있었고 땅은 물에서 나와 물로 형성된 것과, 그때 세상이 물이 넘쳐서 물로 망하였다는 것을 일부러 잊으려 하는 자들입니다(직. 벧후 3:5-6).

세속적인 방식으로 갖가지 규칙과 질서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 의지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이 이득을 취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는 무엇보다도 참 생명이신 주님을 무시하고 대적하는 악한 마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그냥 방주에 타고 계시면 됩니다. 아니, 아직도 망설이고 있거나 혹 방주에 오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서어서 방주에 오르시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방주에 올라와서, 즉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리키신 그 배가 큰 물 위에 떠 있습니다. 물은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는 도구죠. 바이러스 같은..

하지만 큰 죄악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세상에서 위로 들어 올리셔서 그 말씀 안에 거하는 자들을 건지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주 하나님께서 친히 선장이 되시어 방주에 오른 사람들을 등대 불빛, 곧 말씀의 빛을 따라 참 생명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다른 의무나 규칙들이 아닌 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모세가 간절히 기도할 수 있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시험에 포함된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회개는 하지 않고 제 방식대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내려놓게 되지만,

오만한 사람은 환난과 문제의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지 않고 밖으로만 돌리기 때문에 무릎 꿇어 회개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속히 이 환난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어도 만왕의 왕께서는 백성들의 회개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간절히 기도하고 결코 이 와중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눅 18장).

우리를 양자로 택하셨고 참 생명을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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