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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ελετάω 조심하다 애쓰다 묵상하다/시편Ⅲ

#74 소망

교회가 양 떼에 비유된 이유는 양들이 목자의 인도 아래서 생명을 보장받듯 우리가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지도와 보호 아래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새 같이 세상과 교회가 환난이나 곤고를 당할 때 그것을 우연이나 자연적인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이 안타까운 상황을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결과로 알고 먼저 우리의 죄를 찾아 회개함이 옳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회개하여 우리가 처음 하였던 일들을 다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혹 내가 처음 사랑을 버리진 않았는지, 아니면 바른 교리를 외면하고 방종한 생활을 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고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주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를 그치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여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넘치는 진노로 주의 얼굴을 우리에게서 잠시 가리셨으나, 분명 영원한 자비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어 주실 것입니다. (참. 사 54:8)

어찌하여 주님의 목장의 양 떼에게 주께서 노를 뿜어내십니까? 

주님께서 옛적에 값 주고 사신 '주님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님께서 속량하신 주님의 유업인 지파와, 주께서 거하시는 이 시온 산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발걸음을 영원히 황폐해진 곳으로 들어 올리십시오. 

원수가 그 '성소' 안에서 모든 악을 행했습니다. (כל הרע אויב בקדש) (1b-3) 

주님의 적들이 주님의 집회 장소 가운데서 고함치며 자기들의 표징(상징, 우상)들을 거기에 놓았습니다(4). 

 

'성소'는 '주님의 회중'을 가리킵니다. 환난 중에 성소가 원수들에게 욕보이는 오늘날의 현실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양 떼인 교회가 수난을 당할 때에 성도가 의분을 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저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에만 귀 기울이며 자기들만 괜찮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합당한 의분을 품은 성도는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당연히 기도를 드려야 하겠지요.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참. 출 14:13-14) 

이렇게 가만히 있으라 하심은 우리 스스로 구원을 얻기 위한 다른 노력과 행위들을 멈추라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행할 바는 기도 뿐입니다.

복음의 빛이 가리워진 곳은 어두운 곳입니다. 사실상 흑암이 이 땅에 내려졌고 우리도 그 어두운 곳에 있습니다.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사 50:3-5)

 

사람들은 언제나 앞날을 미리 알기를 원합니다. 그저 속히 환난이 그치기를 바라며 여러 가지 예측과 예상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알기를 원하지 않으니 참으로 그 모든 것이 겸손하지 않은 죄악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언제까지 이 환난이 계속될지 알지 못하나 다만 주님만이 진리의 성령으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9)

사람이 미래를 아는 지식을 가지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사람의 말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나중에 들어 맞으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안 봐도 뻔합니다. 그거 점치는 죄와 같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말고 가만히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바라볼 것입니다. 

장래의 일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하나님만 아심이 우리에게 이롭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목숨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25a) (μὴ μεριμνᾶτε τῇ ψυχῇ ὑμῶν)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오늘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장래 일에 관해 교회에 알려주시는 진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환난 중에도 언제나 성도가 가질 소망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며, 또한 그 소망은 오직 주님뿐이시라는 진리입니다. 오늘 시편 말씀이 이 진리를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12)

16세기에 멜랑히톤이 교회의 개혁이 참으로 어려운 것을 체감하고 심히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루터는 그에게 이렇게 조언했다고 합니다. 

“멜랑히톤군, 세상 모든 일에 왕 노릇 하려고 하지 마시오.”

언제나 사람은 하나님께서 왕이심을 기억하지 못할 때 불안에 떨고 걱정 근심에 빠집니다.

마치 자기가 왕이라도 되는 듯이 주의 백성을 걱정하거나 아니면 아주 주님의 원수가 자신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듯이 염려하고 두려워합니다. 

사람이 염려를 사랑으로 포장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걱정해 주니 뭔가 대단히 생각해 주는 것 같지만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내가 걱정해 준 덕분이 아니고 주님께서 기도하게 해주셨고, 주님께서 돌보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아무런 좋은 일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바울 사도가 원함은 자신에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고 한 말씀이 그 뜻입니다. 그 누가 자기를 사도보다 높여 나는 선을 행하였노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불안이나 두려움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하는 말은 하지도 말고 믿지도 마십시오.

영원 중에 계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주님의 구원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주재하시는 왕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왕의 말씀을 들으며 따를 뿐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아니셨다면 진작에 우리는 절망했을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지 않으셨다면 지금 이렇게 살아있을 수도 없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하나님 한 분만이 모든 일의 주관자이심을 알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난제들을 해결하고 안심하는 것입니다.

구름과 달이 빛을 가려 흑암 중에 괴롭다 할지라도 우리 주 우리 왕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면 아무 것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16-17)

주님께서 창조하신 빛으로 인하여 낮과 밤과 여러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다 인간에게 유익하니 낮은 일하기 좋으며, 밤은 쉬기에 좋습니다. 육지와 바다와 계절이 있는 모든 것이 다 유익합니다.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살기 좋도록 땅의 법칙을 정하셨습니다. 지금 이 세계 전체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피조된 세계가 돌아감을 보는 성도는 비록 여전히 흑암 중에 있다 할지라도 영원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에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인 우리를 끝까지 구원하시겠다고 영원히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시인은 그 언약을 이루어주시길 기도합니다.

그 언약을 눈여겨 보소서. 무릇 땅의 어두운 곳에 포악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나이다 (20)

성도가 고난을 당한다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닙니다. 과거 모든 성도가 다 고난을 당했습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교회가 수욕을 당한다고 해서 교회가 주님의 백성이며 몸인 사실을 의심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헛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영원 전에 택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영원한 말씀의 은혜로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끝끝내 우리를 최종적으로 구원해 주십니다.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시 66:16-20)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의 충만하신 역사는 밖으로 행위의 순수성이나 정결함을 나타나게 하실 뿐 아니라,

그 전에 벌써 머릿속 생각까지도 새롭게 만들어 주셔서 범죄해보려는 성향마저도 없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원합니다. 그게 당장 잘하는 것 같고 보기에 좋아 보이지만 교만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니 가만히 있으라 하시고 오직 주만 바라보게 하신 그 말씀은 지금도 백성이 받들어야 할 칙령입니다. 

 

참으로 이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그저 자기 행실을 바르게 하는 데다 초점을 맞추면 결국에는 과거 바리새인들과 같이 주님의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신과 가족과 교회를 얽매이게 하는 규칙들을 만들어 내려 하지 마십시오. 화가 있을 것입니다(눅 11:46).

율법교사들은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그들 자신은 한 손가락도 그 짐에 대지를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에게서는 좋고 선한 것이 전혀 나올 수가 없고 오직 주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죄악에 죄악을 더하는 일을 하지 말고 은혜 위에 은혜만을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 1:16)

그리하여 우리가 선을 행하게 되는데 그걸 또 자기가 하는 것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무슨 말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봉사를 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께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습니다. 아멘. (벧전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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