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에 피하지 않으면 당신은 내일은 죽게 될 거예요. 도망가요."
미갈은 창문으로 다윗을 달아내려 도망치게 한 다음, 우상을 가져다가 침대에 눕히고, 염소털로 엮은 것을 그 머리에 씌워 옷으로 덮어 두었습니다.
곧 사울이 보낸 사람들이 다윗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는 병이 나서 일어날 수가 없다."
사울은 사람을 다시 보내며 명했습니다.
"그를 침상째 이리 들고 와라. 내가 그를 죽여 버리겠다."
그들이 방 안에 들어가 보았을 때 침대에는 우상이 있었고 그 머리에는 염소털로 엮은 것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화를 냅니다.
"너는 어째서 나를 속이고 내 원수를 도망가게 하였느냐?"
"도와 주지 않으면 그가 나를 죽이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참. 삼상 19:11-17)
미갈의 계책으로 다윗이 건짐을 받은 이 일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1)
아이를 물어뜯으려는 개를 본 부모님이 아이를 붙잡아 위로 높이 드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높이 들어 올리셔서 원수로부터 보호해 주십니다.
그럼 이제 시 59편의 표제에도 나오는 (אַל תַּשׁחֵת)/알-타쉬헤트/‘멸하지 말라’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며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가 보게 하시리이다”(10)
나를 영접하시며. 영접하신다고 되어있는 단어는 원어로 (קָדַם)/카담/인데, '앞서가다, 전방에, 정면으로 오다(있다), 만나다'를 의미합니다.
특히 어떤 사람이나 사물보다 시공간상에서 앞서 계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으로 주께서는 언제나 나를 앞서서 가시고, 그곳에 계셔서 나를 만나주십니다.
그러나 단순히 나, 다윗을 앞서서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백성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죽이지 마옵소서 나의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 우리 방패 되신 주여 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흩으시고 낮추소서”(11)
그리고 그가 간구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들을 죽이지 마옵소서”
“멸하지 마소서.”
나의 백성, 곧 주님의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단지 자신의 구원 때문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원수)들을 죽이지 마옵소서”라고 했지만,
실상은 “저희를 이대로 멸하지 마옵소서.” 하는 간구입니다. 어째서요?
우리도 다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원하는 자는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내 믿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중요합니다.
내가 받아서 소유하게 된 믿음보다도, 성실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언약)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얻은 이 믿음은, 이기적으로 나 혼자만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교회에 요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우리를 위해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여 온전히 우리 주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만을 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κρεμάννυμι)/크레만뉘미/'매달다, 막대에 매달다, 매달리다'. 곧 구약의 말씀이며,
그 말씀의 본질은 가장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 24:44)
하나님이 야곱 중에서 다스리심을 땅 끝까지 알게 하소서 (셀라) (13b)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의 능력은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 아닙니다.
그 능력의 본질은 가장 위대한 “구원의 능력”입니다.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참. 16-17)
우리가 이제 주께서 허락하신 평강 중에 거하나 이전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역병, 질병, 침략, 혈세, 마술, 일찍 죽는 일 등등... 수많은 것들로 인해 공포에 떨었습니다.
참으로 주의 자비와 은총 가운데 생활할 수 있음에 감사드리면서
지금도 박해 당하는 성도들을 위해 하나의 교회의 지체로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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