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37:16-17은 좀 더 현실적입니다. 의인의 적은 소유와 악인의 많은 재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16-17)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실상 적은 물질을 가진 경건한 성도가 많은 재산을 가진 악인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24절에도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24) 하였습니다. 참으로 귀한 말씀이지요?
성도는 그가 가는 길이 주님께로부터 확정되었으면 자기 길을 기뻐할 것입니다(23).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갈 길을 미리 정하시고 그대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길을 걷다가도 시험을 당하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저 주님께서 내게 이 길을 걷게 하셨다는 믿음이 있으면, 어떤 역경이나 시련이 닥쳐도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그 직장이나 학업을 통해서 이루시기 위한 주님의 뜻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 확신도 없이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 이 땅에서 하는 일은 주님의 종으로서 하는 게 아니고, 세상 군왕의 노예가 되어 일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다 주님의 종인데 세상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기도가 무엇보다도 먼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일을 구하는 사람도 언제나 먼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세상에 파견된 성도는 그리스도의 의를 날마다 세상에 전파해야 하겠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25절부터는 이 땅에서 성도가 의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식과 자손의 장래와 생계를 많이 염려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헛된 염려입니다. 그런 염려를 하지 말고 그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힘쓸 뿐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냐면..
첫째, 물질 관계에서 의로운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궁핍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남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잠 28:27)
그리고 오늘 시 37:25-26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25-26)
여기서 의인은 온종일 은혜롭게 빌려주어 돕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갚아주셔서 자손들을 도우시고 복을 내려 주십니다.
둘째, 악에서 떠나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27). 그러면 영원히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의’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의에 따라 선을 행한 자에게 상을 주시고, 악인은 벌하십니다. 그 상은 바로 주님이시며, 의인은 주님께서 그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땅을 차지하여 영원히 그곳에서 사는 것입니다(29).
셋째, 입은 지혜와 정의(מִשׁפָּט)/미쉬파트/‘심판, 재판, 정의’를 말하고,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가르침(תּוֹרָה)/토라/‘계명, 법, 가르침’이 있습니다(30-31). 그런 사람은 그의 길에서 흔들림이 없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나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안 되는데 다른 사람만 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생각입니다.
물질 관계에서 의롭게 행하는 것이나,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는 것은 모두 믿음으로 행하는 것인데, 그것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 성경을 읽고 있는 나를 가리켜 훈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런 일을 이루시기 위해 의를 사용하십니다. 이러한 ‘의로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믿음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설령 우리에게 그 어떤 과분한 것들이 내려져서 큰 부귀와 명예와 권력을 얻게 된다 해도, 그것들은 모두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언제나 주님만 바라고, 우리의 가는 길을 지키라고 명하십니다(34). 의인의 구원은 주님께로부터 나오니 주께서 환난 때 우리의 요새이시기 때문입니다(39).
언제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시고, 환난 중에 우리를 구하셔서 구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 안에 피하기 때문입니다(40).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24)
"그가 쓰러져도 내던져지지는 않으리니, 이는 주께서 그의 손을 붙드시기 때문입니다."(24, 직역)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하면서, 항상 주님만 바라고, 손 붙드시는 주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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