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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ελετάω 조심하다 애쓰다 묵상하다/시편Ⅰ

35-1# 내가 아니고 주님께서

비록 현재 내가 주의 은혜로 고요하고 평화롭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서 다른 이들도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시편은 단순히 지금의 내 입장에서 생각할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눈을 통해서 읽어야 합니다. 

주께서 이 땅에서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었을 때에 그의 신성에 간구하셨습니다. 

그의 거룩한 영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워 주십시오.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와주십시오. 창과 단창을 뽑으셔서 나를 추격하는 자들을 막아 주시고, 나에게는 "내가 너를 구원하겠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내 목숨 노리는 자들을 부끄러워 무색게 하시고, 나를 해치려는 자들도 뒤로 물러나 수치를 당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을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흩으시고, 주님의 천사에게서 쫓겨나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가는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어, 주님의 천사가 그들을 추격하게 해주십시오.

몰래 그물을 치고 구덩이를 파며, 이유 없이 내 생명을 빼앗으려는 저 사람들, 저 사람들에게 멸망이 순식간에 닥치게 하시고, 자기가 친 그물에 자기가 걸려서 스스로 멸망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다윗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므로 그가 교회를 대표하여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그때에 내 영혼이 주님을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크게 즐거워할 것입니다. 주님, 주와 같은 분이 누굽니까? 주님은 약한 사람을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며, 가난한 사람과 억압을 받는 사람을 약탈하는 자들에게서 건지십니다. 이것은 나의 뼈 속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1-10)


"주여, 나와 다투는 사람들과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사람들과 싸우십시오.”(1)

“주는 용사, 그 이름 주이시다.”(출 15:3, 공동번역) 

주님께서는 나의 용사가 되어 주십니다.

작은 방패와 큰 방패를 잡으시고, 나를 도우러 일어나십시오. 창을 빼어, 나를 뒤쫓는 사람들을 막아 주시고, 내 영혼에게, "나는 너의 구원이다."라고 말씀하십시오.”(2-3)

나는 너의 구원이다.” 성경은 주 하나님께서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의 구원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시므로, 내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떠난 행복은 그 어떤 것도 나의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장차 새 하늘 새 땅에 이루어질 영광의 왕국이 나의 구원이 되는 이유도 그곳에 내 주 하나님께서 충만히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이를 예표하는 인물로서 이 땅에서 주님의 나라를 대표하여 주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사도들이 그러한 위치에서 주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것이 신약 성경입니다. 

구약의 선지자와 신약의 사도들 외에 다른 모든 성도는 결코 그와 같은 권위를 가지지 않습니다. 단지 그러한 주님 말씀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한 일이나(행 5:5-10), 행 13장에서 사도 바울이 바예수라는 자를 정죄한 것은 교회가 개인적으로 차용해서 기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시편에 나오는 원수에 대한 정죄와 간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나의 개인적인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원수요, 하나님 나라의 원수 된 자를 뜻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기도가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편을 읽고 어떻게 훌륭하다고 하는 믿음을 가진 다윗이 이렇게 자기 원수된 자들을 정죄하고 미워할 수 있느냐고 말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시편도 주님의 거룩한 영에 감동된 다윗을 통해 아버지의 뜻대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예표한 특별한 왕이면서 동시에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거짓 증인들 앞에서 무력하게 선 인자, 혹은 다윗의 참담하고 절망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제9계명을 어기는 자들. 그들에게 내려질 심판은 순식간에 내려질 멸망입니다(8). 

그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에 따라 시행하실 일이었습니다. 

훗날에 어떤 자들이, 귀신에게서 소녀를 구한 바울 일행을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거짓으로 고발한 적이 있습니다. 거짓 증인들이지요. 그러자 교회를 대적하는 관리들이 합심하여 악의에 찬 명령을 내립니다.

그로 인해 바울과 실라는 옷이 찢겨 벗겨진 채로 많은 매를 맞았습니다. 게다가 명을 받은 간수에 의해 어두운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극악한 범죄자라도 되는 것처럼 발도 차꼬에 단단히 채워졌습니다.

아프고, 괴롭고, 억울했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가난하고 비참한 모습입니다. 

다만 주님의 성령께서는 그들의 입을 열어 큰 소리로 주님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9)

그때 거기서 그들은 대적자들을 욕하여 정죄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저들의 멸망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옥에서 나온 바울이 이제 도리어 관리를 정죄한 것은 주의 사도로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지 사적인 원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장래 일을 알 수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러나 오직 주님께서 나의 구원자가 되어주신다는 이 사실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극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만일 주님 아닌 다른 우상에 의해 건져진다면 그것은 결코 기쁜 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그것과 함께 파괴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호 8:4).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10)

오늘도 내일도 이러한 믿음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