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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ελετάω 조심하다 애쓰다 묵상하다

7. 부활과 생명의 말씀 (요 11:25)

제 가장 큰 기쁨은 주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바탕은 전하게 하시는 우리 주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잠깐 듣는 것으론 부족하기에 주님께서는
평상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통해 자녀를 가르치시기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보다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언제나 우리 주님의 자비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5)



부활하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셨고
죽음의 값을 치르셔서 얻으신 의에 우리를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주님의 능력으로 인한 새로운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보증합니다. 

모든 백성의 죄에 대한 값을 치르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전 생애 동안 그리고 그 마지막에 더욱 
온몸과 영혼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유일한 희생 제물로 주께서 우리가 받을 죗값을 대신 갚으심으로써 
우리의 몸과 영혼을 영원한 정죄와 형벌에서 해방시키셨고 
모든 신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의와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당시에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와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들은(행 4:27a) 
그들이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일을 행하고자 했지만(행 2:23) 
그것은 모두 헛된 일일 뿐이었습니다(시 2:1).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무덤에 계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부활] 무덤에서 일으켜지셨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가르침을 주셨고,  
[승천] 하늘에 오르셨으며 [승귀] 다시금 높아지셨습니다.  
[재위]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초림 때에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으나,  
[재림] 다시 오실 때는 심판하시는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성부께서 높여주시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그렇게 성자께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셨습니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이 영광스럽게 높여지는 일 또한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과 은혜로 인해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전적이고 무조건적인 은혜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과 노력은 조금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부활이나, 승천이나, 하나님 보좌 가까운 곳을 차지하는 일을 위해 신경쓰고 애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국의 거처나, 열 고을 다스리는 권세도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으면 반드시 낙원에 이를 것이며, 여전히 주님과 함께 다스릴 것이고, 또한 주의 날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땅에서 썩어질 인간이 아닌 하늘의 살아계신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이므로 이 모든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죽었을 때 천국에 가려면 이 땅에서 열심히 살고 또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선후가 바뀐 작은 실수로 치부될 일이 아니고, 자기 의로 스스로 그리스도를 적대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완전한 공로를 무시하는 교만과 무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일하시고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영생이 여전히 우리 손에 달려 있다면 
뭐하러 주님께서 그 수난을 당하셨겠습니까? 
정말로 하늘에 가는 데 주님의 역사 외에 필히 우리의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면 
신자들을 지옥의 고통에서 구하시기 위해 받으신 수난이 아무 소용 없는 일이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공로는 무효가 되고 조금이라도 죄 지은 자는 절대로 천국에 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지 않은(부정한, 속된, 세상적인, 죄악된) 사람들, 세상 자기 의로써 정죄받은 세리와 창기들, 사마리아인들, 둘째 아들과 행악자에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열심히 신앙생활 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는 그런 거짓말이 아닙니다. 
힘쓰고 애를 써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그런 보여주기식의 가증한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무 위에서 우리를 대신해 죽어 주심으로써 
우리들의 모든 죗값이 완전히 치러졌다는 진리의 말씀이 복음입니다.  

거의 동시에 일어나긴 하지만 굳이 선후를 말씀드리자면, 
영원 중에 살아 계신 주님의 일하심이 먼저이고 
우리의 행함은 그 주님의 사역 결과로써 이 땅에 나타납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하늘에 오를 백성으로 택하셨기에 
우리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는 경건한 삶으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나무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스도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망 권세 이기는 참 생명에 들어갈 의가 그 부활하심으로 인해 우리에게로 전가되었습니다. 
그러니 정말로 우리에게 복은 오로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떤 정죄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롬 8:1). 

그런데도 이 복음의 크신 사랑, 무한하신 자비, 놀라우신 은총을 왜곡하는 불신앙은 언제나 이 땅에서
인간의 선행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낸 기적들을 가지고 많은 이들의 정신을 어지럽게 하며 홀리고 있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함으로써 의를 이루고자 하는 그것이 사실은 행함 없는 공허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 신앙은 주님의 행함이 나타나지 않으니 헛것이고 죽은 지식일 뿐이며, 
사람의 노력과 선행으로 결코 주께서 원하시는 의에 이를 수가 없는 것이 진리입니다(렘 4:1-4; 롬 3:23).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날마다 우리는 범죄만 더해 갈 수밖에 없기에, 
반드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자신의 몸 된 교회에 입히시는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교통하심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고후 13:13).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행 4:24b-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