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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ελετάω 조심하다 애쓰다 묵상하다/요한계시록

천 년 동안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 20:1-15)

 

한국교회에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에 의해 전수됐으며,

1930년대 이후 성결교회 부흥사들을 통해 그들의 신앙이 일반화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천 년의 나라는 신약 시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성도(교회)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천 년은 상징(비유)적인 표현이지 문자 그대로 딱 1,000년이 아닙니다.

다시 오신 예수님께서 굳이 속세의 나라를 천 년 동안 통치하실 이유는 없습니다.

신약 시대인 오늘날 즉 말세에는 벌써 그리스도의 영적인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주의 날 결국 몸의 부활과 심판을 위해서 그분께서 내려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일과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는 계 6, 7, 11,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은 정황이 여러 번 묘사된 것입니다. 

계 16:17-20, 19:17-21, 20:11-15, 21:8에도 최후 심판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부터 다시 오실 그 날까지의 상황을 다양하게 묘사한 일곱 개의 병행적인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곱 촛대-일곱 인-일곱 나팔-용-일곱 대접-바벨론 멸망-극치의 이상

 

그러므로 천 년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그때부터 있는 것입니다.

주의 날 이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온 때부터 
이미 천 년 왕국은 시작된 것입니다.

 

이 믿음에 따라 계 20:6의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부활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일어날 모든 사람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자들, 즉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계 20:4; 6:9-10)은 신실한 증인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성도들을 제외하진 않으셨습니다. 성도의 통치는 이미 계 2:26-27; 3:21에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여튼 짐승을 숭배하지 않아서 죽임 당한 순교자들은 지금은 육신을 벗은 영혼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승리 때문에(12:11) 그들의 영혼 또한 살아서 승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첫째 부활이란,

성도들의 순교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 사이에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그들의 영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제 둘째 사망에 대해 생각하면, 둘째가 있다면 첫째도 있을 것이니 

첫째 하늘과 땅, 새(둘째) 하늘과 땅이 있듯이(계21:1) 첫째 사망과 마지막 사망이 있습니다.

첫째 사망은 당연히 육신의 죽음입니다(고전 15:22; 히 9:27). 사람이 땅과 함께 저주를 받아서 누구든지 죽어서 썩게 된 그것입니다.

첫째 사망의 저주는 더욱 무서운 둘째 사망의 도래를 예표합니다. 그것은 참된 믿음이 없는 악인들이 지옥에 갇히는 것입니다(계 20:14-15; 요 5: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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