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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ελετάω 조심하다 애쓰다 묵상하다/요한복음

행복

오늘은 행복(אֶשֶׁר)/에셰르/'행복. 복'에 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은 행복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합니까? 

 

행복한 사람(אַ֥שְֽׁרֵי הָאִ֗ישׁ)은 -오직 주의 토라(תּוֹרָה)'(율)법, 지시, 가르침, 훈계, 계명, 말씀' 안에 그의 기쁨이 있어서- 그의 가르침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다. (시 1:1a, 2)

 

이 구문에서 복은 일단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맛볼 수 있는 행복을 의미합니다. 

현재에 행복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죠. 시제를 보면 먼저 하나님께 복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는 데는 아래의 말씀들이 참고가 되겠습니다. 

 

오라,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자들아. 세상 기초가 놓인 때부터 너희를 위해 예비된 그 나라를 이어 받아라. (마 25:34b)

 

우리가 다 그의 충만으로 모든 것을 받았으니, 은혜 위에 은혜를 받았다. (요 1:16)

 

우리에게 내려보내 주신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1:4a),

성경은 그리스도의 소생인 우리가 그분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요 1:3; 행 17:28). 

우리가 살아서 존재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은혜의 말씀의 역사하심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을 가리켜 말할 때 다른 생명체가 아니고 특히 '사람들의' 빛이라 하였습니다. 

 

ἐν αὐτῷ ζωὴ ἦν, καὶ ἡ ζωὴ ἦν τὸ φῶς τῶν ἀνθρώπων·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리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 1:4)

 

인간이 다른 동식물들, 혹은 천사들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글을 쓰는 것입니다. 다른 피조물들은 인간처럼 쓰지 못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른 피조물과 달리 육체로 행할 뿐 아니라 깊은 사고가 가능한 인류에게 그 생명 빛이시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만은 언제나 자기 안에서 말씀의 능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즉 어두운 우리 마음을 비추는 지성의 빛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타락하고 부패한 우리 마음이 어두워서 스스로 말씀을 깨닫지 못하기에 상고할 수 있도록 친히 오셔서 우리의 이성에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사람이 복의 근원인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복은 그리스도 뿐이며, 행복한 사람은 그의 안에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말씀이 있어서 우리는 선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

즉 악인들의 말을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로지 주의 말씀이 기뻐서 밤낮으로 묵상하게 됩니다(시 1:1). 

그것이 성도의 선행이고 성도의 행복입니다. 세상적인 행복과는 다르죠. 

말씀의 복을 받은 사람만이 기쁨으로 경건을 행하며, 그들만이 지금 참된 행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행복합니까?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종들을 보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아멘, 내가 너희에게 말하니, 그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서 식사를 도울 것이다. (눅 12:37)

 

자유를 주는 온전한 말씀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머무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고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하는 일로 행복할 것이다. (약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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