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
과거 구약 시대 율법의 안식일 계명은 신약 시대의 우리에게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 주시기 위한 모형입니다. 안식일 계명의 핵심은 일곱째 날(토요일)에 제사(예배)를 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라는 것이었죠.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하루라도 고단한 노동에서 벗어나서 쉴 수 있도록 해주시려는 하나님의 인애에 따른 것이라 생각될 수 있으나, 사실은 이 땅의 일을 다 내려놓고 하루만이라도 하늘의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늘 반복해서 그 일에 실패했습니다. '이스라엘'(יִשְׂרָאֵל), 그 의미가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나님께서 싸우신다'인데, 점차 그것은 거부하고 온갖 헛된 일들에만 매진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신 말씀이 신약의 성도인 우리에게는 어떤 교훈이 됩니까?
우리는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는 사람이 자기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의 의미는 바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온전히 받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주 예수님의 영광의 영, 곧 성령님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주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어진 모든 날들에 우리의 머리이시며 왕 되신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을 누리며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관해서 생각해 볼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신약의 안식일이 주일로 옮겨졌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예를 들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1648)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레 중에 어느 날을 안식일로 정하셨습니까?'[59] 라는 질문에,
'시초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매 주의 일곱째 날(토요일)을, 그 후로부터 세상 끝 날이 될 때까지는 매주의 첫 날(일요일)을 명하셨으니 이 날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입니다.'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명하셔서 일곱째 날인 안식일이 여덟째 날로 변경되었다는 것일까요?
16세기 종교개혁 시기까지만해도 신약의 안식일이 주일이라는 개념은 있지도 않았습니다. 루터와 칼빈은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을 철저히 부정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 어디에도 안식일이 제7일에서 8일째로 옮겨갔다고 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전혀 근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좀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억지로 일곱째 날이 여덟째 날로 바뀌었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창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사역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을 인간이 복을 받고 거룩함을 입는 날로 정하셨습니다. 이후 출 20:11에, 십계명의 제4계명을 주시면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쉬셨으며,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십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제4계명에서는 처음부터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이라고 명확히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쉬셨는데,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안식을 마치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말씀은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또 시 22:4에 나오는 '영원토록 긴 날'(עוֹלָם עַד אֹרֶךְ יוֹם)/올람 아드 오레크 욤/'영원의 ‘영속적인(계속되는 미래의)’ 길이의 날'(개역개정에는 '영원한 장수'로 번역됨)은 ‘하나님의 안식일’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합니다.
길이가 영원한 날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거룩하신 하나님의 일곱째 날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마치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안식일은 영속적인 길이의 날이며, 또한 하나님의 안식은 곧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시 24편을 보면, 영광의 왕을 상징하는 ‘언약궤’가 예루살렘의 성문으로 진입하는 것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이 그 궤 안에 고요히 쉬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군대에 승리를 안겨주십니다.
쉬고 계신데, 전쟁에 능하시며, 강한 힘으로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만군의 왕이신 하나님의 안식이며,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쉬셨다는 말씀(출 20:11)이 가리키는 바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의 시작'은, 모든 보이지 않는 것들과(하늘) 보이는 것들(땅)에 대한 위대한 창조를 마치신,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시작'이었습니다. 창조 후에 곧바로 안식하셨는데, 동시에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로써 만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 편에서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하나님의 일곱째 날이 온 하늘과 땅에서 영원토록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편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 시대 내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해 오다가 결국 예수님마저 거부했으므로(행 3:13-14) 온전하게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 오순절 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위해서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셨고(행 2), 그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으로 임하여 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안식일이 제자들 안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주님의 초림 이후(참. 마 12:28),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부터는 안식일이 토요일이 아니라 모든 날들이 됩니다.
그러므로 아시는 바와 같이 신약의 안식일은 주일만이 아니고 일주일의 모든 날들입니다. 임하여 온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든 날들이 복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안식일이 이제는 주의 백성들에게 모든 날들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매일매일 헌신의 삶으로 주님을 예배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된 예배의 의미입니다(롬 12:1-2).
*이스라엘에 주어진 구약의 안식일 계명은 돌판에 새긴 모형(그림자)이며, 그 원형(실체)인 영원히 지속되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예표합니다. |
*한편, 신약의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 계명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습니다. 주일 성수는 안식일 준수가 아닙니다. 제자들이 일요일에 부활하신 주님을 기념하고자 일요일에 모여 기도와 성찬을 나누었고, 시간이 흐르며 공적인 예배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사도들의 전통으로 인정되어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고, 보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1. 보이지 않는 교회(무형 교회): 태초로부터 마지막 날까지의 모든 신자들, 영원 중에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 나라의 모든 백성들 2. 보이는 교회(유형 교회): 현재 이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신도, 회중, 집회(congregation)임 |
*임하여 온 하나님의 나라, 곧 '은혜의 왕국'(regnum gratiae/무형 교회)이, 이 땅에서 교회라는 형태로 드러나고(유형 교회), 하늘에 계신 교회의 왕께서 지금도 이 땅의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통치를 '권능의 왕국'(regnum potentiae)이라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권능의 왕국과 은혜의 왕국은 나눠지지 않고 연합되어 '영광의 왕국'(regnum gloriae)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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