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
τὰ γὰρ ὀψώνια 왜냐하면 삯들 τῆς ἁμαρτίας 죄의 θάνατος, 사망이다 (23a)
τὸ δὲ χάρισμα 그런데 은사는 τοῦ θεοῦ 하나님의 ζωὴ 생명이다 (23b)
αἰώνιος 영원한 ἐν 안에 Χριστῷ Ἰησοῦ 그리스도 예수 τῷ κυρίῳ ἡμῶν. 우리의 주님이신 (23c)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직역, 롬 6:23)
이 구절에서 먼저 '삯들'(ὀψώνια)/옵소니아/{ὀψώνιον/옵소니온/'삯, 보수'의 복수}과 '은사'(χάρισμα)/카리스마/{단수}를 비교하면 '삯들'은 뭔가 많고 산만한 느낌인데 비해 '은사'는 단출하고 명료한 것을 보게 됩니다.
삯은 노동 행위의 대가입니다(눅 3:14; 고전 9:7; 고후 11:8). 먼저든 나중에든 삯에는 반드시 수고와 고통이 있어야 하므로 감사가 전제될 수 없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롬 4:4)
반면에 은사(χάρισμα)는 은혜(χάρις)/카리스/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은사는 은혜에서 나오기에 언제나 받는 자의 기쁨과 감사를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죄'(ἁμαρτία)/하마르티아/와 '하나님'(θεός)/데오스/이 대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라 하지 않고 '죄'라 했습니다. 죄가 인격을 가진 것처럼 묘사합니다.
죄가 기회를 탑니다. 죄는 세력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삯을 주겠다고,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미끼를 던집니다. 그리고 걸려든 이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을 시킵니다.
죄가 계명으로 말미암아 기회를 타서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다. (직, 롬 7:11)
죄가 삯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에게 기회를 준 사람은 자기 스스로 미끼를 문 것입니다. 그는 대가를 얻기 위해 행하며 자진해서 갖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주십니다.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일하지 않은 자도 의롭다고 여겨 주십니다.
경건하지 못한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비록 행위가 없어도(일하지 않더라도)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집니다.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도 말하기를 (직, 롬 4:5-6)
값없이 칭의를 주시니(롬 3:2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 행위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고, 달음질하는 자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며,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직, 롬 9:16)
원함이나 달음박질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간절히 바라고 열심히 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바라지 말고 열심히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지요. 그렇게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은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제 사망과 생명이 대비됩니다.
죄가 아무리 많은들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죄의 결과가 좋을 수는 없습니다. 항상 죄에서는 사망이 결과로 나옵니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생명(ζωὴ)/조에/을 주십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께로부터는 언제나 좋은 것이 나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생명은 하나뿐이지만 크나큰 가치가 있습니다. 이 생명은 단순히 계속해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안에(ἐν)/엔/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분을 그리스도(Χριστῷ) 예수(Ἰησοῦ)의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τὸ δὲ χάρισμα 그런데 은사는 τοῦ θεοῦ 하나님의 ζωὴ 생명이다 αἰώνιος 영원한 ἐν 안에 Χριστῷ Ἰησοῦ 그리스도 예수 τῷ κυρίῳ ἡμῶν. 우리의 주님이신 (23b-c)
그분은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신 '그리스도'이시며, '예수'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분은 구약의 '여호와'에 해당되는 '주'(κύριος)/퀴리오스/이신데 '우리의 주님'(κυρίῳ ἡμῶν)이십니다. 이 구문에서처럼 우리와 뗄 수 없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계신 주님이십니다.
참으로 전에는 우리가 스스로 자기 몸을 죄에게 종으로 내주어 악행들을 저질러 왔으나 이제는 우리의 지체들을 의의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죄의 종이었을 때에 의에 대해 자유하여 무슨 열매를 거두었나요?
참으로 불의와 범죄의 결말은 사망임에도 이제 죄로부터 자유케 된 의의 종으로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게 되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입니다. (참. 6:19-22)
만일 사람의 결심이나 행위를 더 중시하든지 낙심을 한다든지 혹은 그저 교만한 생각이 속에서 들끓는다든지 하면 이 진리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나의 어떤 노력이나 행위를 감히 하나님 앞에 내세울 수가 있을까요?
사실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사람이 마땅히 사망의 벌을 받아야 하나 '생명'은 그러한 인과관계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만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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