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벨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이었습니다.
엣바알은 ‘바알의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는 원래 아세라 우상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딸이 북이스라엘 7대 왕 아합과 결혼하자 사마리아 온 땅에 바알과 아세라 우상이 퍼졌습니다.
엘리야가 종으로 쓰임 받은 그 시대,
결국 주 하나님의 이적으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은 모두 멸망하고 땅에는 삼 년 반 만에 비가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곧바로 이세벨에게 쫓기게 되었지요. 그는 광야로 도망쳤습니다(왕상 19장).
그리고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서 기도합니다.
주님, 이제 충분하오니 제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 제가 제 조상들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고 그 한 나무 아래 누워 자고 있는데 천사가 나와서 먹을 것을 주죠.
그걸로 40일을 버티고 걸어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됩니다(8). 거기서 굴에 들어가 머물렀습니다.
호렙산은 시내산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곳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마치 결혼 같은 언약을 맺었던 바로 그 장소였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이스라엘 40년 광야 생활을 상징하는 40일 광야 길을 걸어가서, 모세처럼 이스라엘을 대표해 주께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출 33:20-23)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굴 속에서 엘리야에게 주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제가 열심이 유별하여… 오직 저만 남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불, 바람, 지진 중에는 주께서 계시지 않으셨고 세미한 음성 가운데 계셨습니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주께서 지나가시는데, 주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주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모세가 하나님의 등만 보았듯 엘리야는 소리만 들었습니다. 폭풍 같은 환난이 지난 뒤 고요함 속에서였습니다.
세미한 소리(ק֖וֹל דְּמָמָ֥ה דַקָּֽה)(12)는 미세한(혹은 가냘픈) 침묵(고요)의 (목)소리입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만한 정적 속에서 주께서 말씀하고 계심을 알 수 있는 그런 침묵입니다.
오랜 갈증과 고통 뒤에 찾아온 고요 속에 소리가 들려옵니다.
삶의 예배 곧 경건 속에서 말씀과 찬양과 기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침묵입니다.
사실 엘리야가 원한 것은 그가 있는 굴 앞을 지나간 바람, 지진, 불 같은 위엄 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개혁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은 거기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세미한 소리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침묵으로 계시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침묵하시는 방식으로 우리들의 삶을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하사엘, 예후, 엘리사를 세울 것을 명하시면서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을 철저히 심판하시되 그것에 무릎 꿇지 아니한 경건한 사람들 칠천을 남겨두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남겨두었다.
과거형입니다(וְהִשְׁאַרְתִּ֥י).
엘리야도 몰랐고 이 세상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영원 중에 계신 주 하나님께서는 참 이스라엘을 이미 모두 남겨 놓으셨습니다.
주께서 침묵하신다고 누가 그를 정죄하며 그가 얼굴을 가리신다면 누가 그를 뵈올 수 있으랴 그는 민족에게나 인류에게나 동일하시니 이는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 백성을 옭아매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욥 34:2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