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주] 하나님의 선물
[62문] 어째서 우리들은 우리가 행하는 선한 일들을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될만한 의는 절대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모든 면이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갈 3:10; 롬 3:20; 신 27:26).
하지만 우리들이 이 땅에서 행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들조차도 지극히 거룩하신 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죄로 오염된 불완전한 것일 뿐이고,
그래서 우리의 선행은 조금도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63문]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와 다음 세상에서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어째서 우리의 선행에 아무런 공로가 없다고 말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한 우리에게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은혜로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사 48:17; 눅 17:10; 롬 5:15-17; 딤후 4:7-8; 히 11:6).
[64문] 하지만 이렇게 가르치면 사람들이 선한 일들을 행하는 것에 무관심하게 되고 사악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사람이 감사의 선한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의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가 갈라디아서인데요.
그 내용은 한 마디로 말하면 유대주의의 거짓 선생들에게 현혹되지 말고 진리의 빛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을 미혹케 한 율법선생들의 가르침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죽어서 천국에 가려면 율법을 지키는 선을 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었는데요, 그게 갈라디아의 성도들이 듣기에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제멋대로 주님을 상상하고 인간이 믿는 것을 믿음이라 정의한다면 그것으로는 불충분하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바른 지식을 소유하면 오직 믿음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도 만약 제대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하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시고 현재의 악한 세대에서 건져 내신 일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해서가 아니라 선을 이루어 주신 주님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 전제는 율법 없이는 올바른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정말 이 그럴듯한 거짓말에는 속지 않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시 갈라디아의 성도들도 그들을 따라 율법을 지키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그와 같은 상황에 대해 바울 사도는 그것이 바로 배교이고, 주님을 부인하는 일이며, 하나님을 떠나 다른 복음을 찾는 것이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하지만 혹시 하나님과 경건에 관해서 많이 알고는 있어도 실천이 부족한 성도들을 염두에 둔 말씀이 아닌가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많이 알지만 실천이 없다는 것은 정확한 말이 아닌데요,
하나님의 백성이 실패하는 이유는 행위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바른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잠 10:21; 호 4:6).
하나님의 율법이 누구를 가리키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킨 선택받은 백성입니까?
그런 것 같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사 64:6)
율법은 그 규례과 조목들을 지켜서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 힘써 선을 이루고자 하나 도무지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죄인들이 아니라,
약속받은 죄인들을 의롭다 하시기 위해 온몸 바쳐 율법의 뜻을 신실하게 이행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율법을 말하면서 다른 사람을 강조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행하신 큰 일을 말할 것이며 그렇게 전해야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행위에 따라서 하나님의 상급이 비례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 생각은 세속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설령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율법을 지켰다 하더라도 그것은 완전할 수가 없는데요,
왜냐하면 그 선한 행위조차도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죄악으로 더럽혀진 행위에 하나님께서 감동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더구나 하나님께 상을 받기 위해서 그런 일들을 행해야 한다고요? (눅 11:46)
우리 선행이 사람들에게는 좋게 보일 수 있어도 도대체 하나님께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마 6:1, 5, 16)
우리가 율법을 지키거나 기도하거나 금식하는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보답하실 의무가 전혀 없으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연약함 때문에 상을 약속하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보상은 죄로 얼룩진 우리들의 선한 행위들에 따라 이 땅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거룩하신 주의 이름 때문에 고난 받는 교회에게 주어지는 하늘에서의 상급입니다(마 5:11-12).
하나님의 율법이 상징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니,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와 미래에도 바울이나 우리들이나 우리의 자손들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께서 홀로 모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시 72:18).
하나님의 영광이 주께 있으니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각 지체들의 모든 영광은 즉시 머리로 돌려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지식에 따르면 교회의 선행을 보고서 그 아름다운 행위를 소리 높여 자랑할 것이 아니라
언제나 먼저 우리 안에서 선을 이루시는 놀라우신 주님께 감사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