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부활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죽음을 수반합니다.
예를 들면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계 20:4)이라는 표현이 이미 그들의 육신이 죽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짐승이나 그의 형상에 절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도 않은 순교자들,
그들은 영혼들로 살아서(이를 첫째 부활이라 표현함)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을 다스립니다.
하지만 순교자들만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꼭 목을 베인 그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이기고 주의 일들을 끝까지 지키는 성도에게는 나라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고(계 2:24-27)
...누구든지...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0-21)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순교자들이 더 영광된 부활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도 다른 성도들과 함께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오실 주의 날에 하늘과 땅을 관통하여 단번에 일어날 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나 오순절 성령 강림과 같이 단일한 사건입니다.
전체 성경은 결코 부활이 두 번 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요한계시록에 첫째 둘째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이유는 이 책이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성경은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에 대해서도 부활이 여러 번 있는 게 아니지만 나누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는 과거에도 이적에 의해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있었어도 그들을 부활했다고 하진 않습니다. 그들은 또다시 죽었지만 부활하면 다시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시기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 부활이란 육신을 벗은 성도가 하늘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삶과, 이미 이 땅에서 새 생명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것을 표현한 은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롬 6:4)
결국 순교자들만이 아니라 성도인 우리도 당연히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둘째 사망이 우리를 다스릴 권능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주님과 함께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계 20:6).
물론 그것이 문자적인 천 년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년 왕국을 현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바르게 알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리스도의 영적인(=실제적인) 통치가 우리 속에서 이미 시작된 사실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