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아무개 2020. 7. 28. 06:08

노아가 하나님께 기쁨으로 자원하여 번제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신 말씀이 '노아 언약'(창 8:21-9:17)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모든 날들 동안에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않도록 하심으로써 인류를 보존해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8:21-22).


 
2. 하나님의 축복입니다(9:1-7).

먼저 복을 주셨습니다.

앞선 심판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죽음의 땅을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 주시겠다 약속해주신 다음에,

이제는 정말로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복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을 것도 주셨습니다.

이전까지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를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가 먹을거리였지만 이제는 살아 움직이는 모든 동물들도 사람이 먹을 양식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피의 보복 제도를 통한 인류 보존의 약속이며 율법처럼 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9:4-6)

이것은 단순히 사람의 먹을 것이 풍성해지는 은혜라기보다는 -그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바가 더욱 중요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 것은 짐승이든 다른 사람이든지 간에 그 생명으로 생명의 값을 치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사람의 생명이 귀한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이 사람 안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고기를 먹게 해주셨지만 피까지 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단순히 동물의 생명도 사람처럼 귀해서가 아니고 그 피가 가리키는 실체인 생명이 귀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3. 이 언약을 맺으신 대상과 그 표징인 무지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9:8-17).

하나님께서는 9:10-11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언약을 노아와 그 가족을 포함한 모든 생물을 대상으로 세우셨고

그 효력은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한 세대까지 적용됩니다(12).

그러므로 이 영원한 세대에는 당연히 우리들도 포함됩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가 이 말씀에 관해 필히 주의해야 할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단순히 복종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복종은 지식도 생각도 없이 그냥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복종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거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 중심의 지식이요 인간의 자유 의지에 따른 생각인 믿음이 빠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 없이도 복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향기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만일 자기 중심에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무조건적인 복종을 해도 좋을 것입니다.

중심에 기쁨과 감사가 있는 복종이라면 그것이 바로 순종일 테니까요.

 

그러니 지금은 그 향기가 없는 복종의 위험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결코 절대적인 순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따르긴 따르는데 조건을 달고 하나님의 행동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은혜를 베푸시는데, 인간인 우리가 어찌 하나님께 조건을 달고 행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노예가 억지로 주인의 말에 따라야만 하는 그런 상황과 입장에 놓여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굳이 복종이 아닌 순종이라는 말을 쓰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믿음 없이 복종하지 않도록 사람을 이렇게 생각을 하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까 위에서 언급한 대로 지식과 함께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유한 지식을 따라 자유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좇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고기를 먹을 수 있고, 피는 먹지 말아야 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행위가 가리키는 의미가 무엇이고 나아가 거기 담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식(믿음)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특히 피의 보복 제도라고 말씀드린 말씀의 요점은 율법과 똑같습니다. 율법 이전의 율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율법 제도는 정결한 것들과 부정한 것들을 나누고, 해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우리에게 제시하지요.

그것을 지키게끔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킨다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든지, 복을 받으려면 그것을 지켜야 한다든지 하는 말은 전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순종에 조건을 다는 것이고, 믿음(지식) 없이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서 우리 중심에 어떤 지식을 소유하기를 바라십니까? 

그것은 위에서 노아 언약의 두 번째 부분, 하나님께서 먼저 복을 주셨다는 사실로부터 깨닫게 됩니다.

노아의 행위가 먼저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먼저 그에게 복을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복은 오직 주님 뿐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시 16:2)

 

벌써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인해 택자의 구원은 확정된 일입니다.

영원 중의 예정하심대로 살게 될 모든 사람들이 이미 선택되었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요일 5:16)

 

말씀이 이러한데도 영원이 아닌 이 시공간의 구속사에 주어진 율법을 통해서 살겠다고 한다면 아직은 율법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새 사람을 입은 우리에게 거듭난 자로서의 합당한 삶으로 나아가는 길, 성화의 그 길을 가르쳐주는 데에 주된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억지로 무리를 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것이 공로로 인정되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우리 안에 이미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말미암아서, 억지로가 아니라 자유롭게 성취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지켜지는 율법은 모든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도 도덕법 즉 십계명에 해당되는 것이죠.

나머지는 다 예수님과 신약의 성도들 즉 교회인 실체를 가리키는 모형이며 그림자일 뿐입니다.

실체가 드러난 이후로는 사람이 지키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사와 절기에 관한 율법들을, 그 법조문들을 전혀 지킬 필요가 없고 또 지켜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율법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지키는 우리의 행위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실체 때문입니다.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눅 24:44)

 

다시금 땅 위에 선 사람들.

남은 자들과 함께 걸어가야 하는 길.

그러나 당장 먹을 것조차 없어 앞은 깜깜하기만 합니다. 

우리는 이제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요? 

바로 그때, 주께서 언약을 통해 살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인 이 구약과 신약 안에서 새 생명의 길을 걷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으로 돌아갑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 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