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아무개 2020. 5. 7. 06:48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직. 요 2:16b)

μὴ ποιεῖτε τὸν οἶκον τοῦ πατρός μου οἶκον ἐμπορίου.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켜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외에는 성경 어디에도 이 땅에 세워진 가시적인 유형의 예배 처소가 아버지의 집이라 불린 경우는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위와 같이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아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큰 신성 모독죄로 여겨졌으니까요. 신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려면 자기도 신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독생하신 하나님께서(요 1:18) 산상수훈 중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러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들이 될 것이다 (직. 마 5:44-45a)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인 우리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지상의 성전을 가리켜 '아버지의 집' 또는 '우리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말도 안 되는 질문이지요. 사람이 지은 성전 자체가 오늘날에는 없으니 당연히 안 됩니다.  

그럼 구약시대의 성전을 가리켜 우리가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그것도 안 되죠. 신성 모독입니다. 그 성전을 가리켜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를 수 있으셨던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지상의 성전이 된 우리들, 즉 성도를 가리켜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가요? 

좋습니다. 하지만 어색하죠. 예수님의 몸을 두고 건물인 '집'에 빗대니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확실히 그때 유대인들은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그것을 사흘 안에 일으킬 것이다."

"이 성전이 지어지는 데 사십육 년이나 걸렸는데 당신이 그것을 삼일 안에 세우겠다는 말이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한 것은 자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참. 요 2:19-21)

그리고 오늘날 지상에 일으켜진 성전도 이 말씀처럼 건물이 아니라 회중을 가리킵니다. 

현재 개교회들과 거기 속한 예배당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집이나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하면 필시 오해가 생깁니다. 

용어가 뭐가 중요하냐 뜻만 통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는데도 오해하게끔 말해온 것이 교회의 병폐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보편적인 믿음이 없이는 주님의 뜻을 받들기란 요원한 일이겠지요. 그래서 주님의 말씀은 열심으로 배워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편을 통해서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 된 지위에 있으므로 개교회를 아버지의 집이라 불러도 상관없지 않겠느냐는 주장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오해가 될 말을 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성경은 그런 차원에서 성도의 몸을 성전이라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라야 땅의 성전이 확실히 아버지의 집이 됩니다. 

여러분의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성전인 줄을 알지 못합니까? (고전 6:19a)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합니다.

'이 건물을 무너뜨리고 사흘 안에 다시 짓는다고?' 

그러나 주님께서는 결코 그 성전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하늘에 있고, 또 주의 교회가, 주의 자녀들이 온 하늘과 땅에서 군대처럼 전진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과 달리 자칫 교회를 건물이나 예배 처소로 오해하게끔 만드는 말은 하지 말고 이제는 참으로 시온을 향하여 깃발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시온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난과 큰 멸망을 가져오리라 (렘 4:6)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이 아버지의 집이 될 수가 있습니까? 아니라면 도대체 왜 땅에 있는 어느 한 곳을 힘주어 아버지의 집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것은 구약 시대에도 금하는 일이었고 지금이라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건데도 절대로 고집을 꺽지 않습니다. 과거에 그렇게 배웠고 여태껏 그렇게 믿고 생활을 해 왔으니까요. 

앞의 #2-1의 글에서 언급되었듯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들을 성전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면 예배를 위해 좋은 것이 아닌가?'라는 그럴 듯한 주장은 사실 사기나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중심에 예배가 아닌 다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거짓된 종교적 관행에 숨겨진 잘못된 의식과 관념을 아시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인 성전, 즉 교회인 우리들과 성도의 모임들을 하나하나 구별하여 세우신 이유는 특별히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이지 강도의 소굴이 되게 하려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막 13:2)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막 14:58) 

우리가 교회의 거룩함을 흠 없이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것은 그 어떤 것도 교회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속화가 되어선 안 되겠지요?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이미 심각할 정도로 세상적인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말씀의 깃발을 세우시어 성전을 정결케 하시기 위한 행동을 그때 하셨던 것이고 또한 그 이후로도 영원히 행하십니다. 

그렇게 주께서 과거에도 그 이후로도 이 모든 굉장한 일들을 계속해서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요 2:17)

그것은 말씀으로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을 아끼시는 주께서, 특별히 교회로 택하신 우리들을 참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주의 전'이라는 이 부분적인 말로써 예배 전체를 표현하고 있는데(시 69:9; 제유법)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가 곧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 자체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참으로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예배를 위해 모이고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또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고자 하는 열성이 너무도 강하여 악인들의 온갖 비방을 기꺼이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실제로는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심정과 행위를 묘사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깨달을 때에 성경 말씀을 기억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성경의 가르침이 없다면 그들의 깨달음도 없었을 것이며, 우리도 독생하신 하나님의 여러 행동들과 고난의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실히 성경을 묵상하고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서 행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그러한 열심을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한편 주의할 점은 우리 모두가 동일한 사명을 받은 것은 아니므로 교회의 악을 바로잡으려고 채찍을 휘두르는 일이 모두에게 허용되진 않았다는 것입니다(칼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