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아무개 2020. 2. 26. 04:24

40:13-17

여호와(יְהוָה)‘주’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רצה יהוה להצילני יהוה לעזרתי חושה)

내 생명(נֶפֶשׁ)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는 다 수치와(בּוּשׁ)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חָפֵר)/하페르/'부끄러워하다, 수치를 당하다' 나의 해(רַע)를 기뻐하는 자는 다 물러가 욕을 당하게 하소서

나를 향하여(לְ)/레/'~에게 to, ~에서 at, ~안에 in, ~에 관하여 in reference to, ~의 of, ~에 의하여 by' 하하 하하 하며 조소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놀라게 하소서(ישמו על עקב בשתם האמרים לי האח האח)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יְהוָה)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אֲדֹנָי)/아도나이/'나의 주 my Lord, LORD'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אַתָּה)/앗타/'당신, 그대 thou'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אֱלֹהִים)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70:1-5

기억 제물(להזכיר)을 위한 다윗의 시’ [다윗의 시로 기념식에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나님(אֱלֹהִים)/엘로힘/'하나님, 신(복수형)'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אלהים להצילני יהוה לעזרתי חושה)

나의 영혼(נֶפֶשׁ)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בּוּשׁ)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חָפֵר) 나의 상함(רַע)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ישובו על עקב בשתם האמרים האח האח)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אֱלֹהִים)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אֱלֹהִים)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אַתָּה)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יְהוָה)여 지체하지 마소서


시 70편은 시 40:13-17과 거의 똑같습니다. 시 40편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여호와'(주)를 많이 사용한 1권에 속해 있고, 70편은 '엘로힘'(하나님)을 더 많이 쓴 모음집인 2권에 들어있습니다.

두 시를 대조하면 원어는 같아도 한글로 번역할 때 조금씩 다르게 바꾸어 표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와 그래도 되나요? 

예수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은 원문도 사본입니다. 원본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저 말씀의 율법의 일점 일획은 보이는 문자들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본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율법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주님께서 다 이루시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할 수 없고 오직 말씀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완전히 만족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원어 성경도 사본들인데, 그것들이 오랜 세월 수많은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면서 조금씩 더 변형이 되어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이유는 주님께서 그의 거룩하신 영으로 그 말씀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않으신다면 성경의 내용이 다 달라서 교회가 보편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문자적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외우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려면 수없이 변형된 이 번역본이 아니라 원본이 남아 있어서 그것을 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이 땅에 단 하나의 원본도 남겨놓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게 남아 있으면 눈으로 보는 것 좋아하는 인간들에게 또 하나의 우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로마 가톨릭은 중세 암흑기부터 수많은 우상들을 만들어 세워서 사람들의 눈을 현혹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도 천주교 성당을 보시면 동상들이 많이 있죠? 성상이라고 하며 예수님 동상도 있고 마리아도 있고, 사도들도 있고, 성화라고 하는 그림들도 있고, 십자가도 있고, 지금도 수많은 상징과 표징들을 만들어댑니다.

그것들이 다 우상이 됩니다. 인간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거짓된 형상이 우상입니다. 그 앞에서 기도하고 하면 벌써 잘못된 것입니다.

심지어 십자가도 우상시 하면 얼마든지 우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면 망령된 미신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개혁자들을 사용하셔서 말씀을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여 모든 신자들이 그 뜻을 알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성경의 글자 하나하나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의 보편적이고 실제적인 의미, 곧 진리를 알고 기억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70편의 맨 앞에는 기억 제물(기념 봉헌)을 위한 다윗의 시라는 표제가 들어있습니다. 기억을 일으켜주는 역할을 하는 시라는 의미입니다. 무슨 기억일까요

다윗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5a)라고 말합니다.

당연히 물질적인 가난과 궁핍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왕이었으니까요

다윗은 땅에서 지고한 왕의 신분이었지만 자신이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와 마찬가지로 택하신 족속이며, 이 땅에서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어째서 그런가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우리의 본질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본성이 죄에 물들어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 70편에 해당하는 40편 본문의 바로 앞 구절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40:12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이미 예수님의 보혈로 모든 죄가 가려진 중생한 성도일지라도 아직은 하늘에 있지 않고 여전히 땅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기에 참으로 우리는 다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그러니 날마다 우리를 다만 악에서 구해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사탄의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그렇게 하라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우리를 도우시길 원하셨으니까요

 

40:13a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רָצָה)/라차/'기뻐하다, 호의를 보이다' 저를 구원하소서 

‘주여 기쁘게 여기셔서 저를 구해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주께서 를 구해주시는 일을 기뻐하시길 바라는 기도입니다.

오늘 70편에는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저를 구해주십시오.' 

이 간구는 이미 얻은 영생의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당한 환난으로부터의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주여 지금도 저를 구원하기를 기뻐해 주십시오.'라는 의미의 기도입니다.

시인 다윗도 당시에 이미 구원받은 신자였지만 아직도 이 땅에서 겪게 될 어려운 일들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그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그런 환난과 고난을 받을 때마다하나님께서는 그를 건져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시 70:4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는 주의 백성들을 날마다 계속해서 구원해 주시는 일이 포함되어 있고,

하늘 보좌에 앉으신 주께서 영원 중에서 그 일을 시행하시므로땅에서 날마다 계속해서 그 일들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주를 찾는,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건짐 받음을 인하여 위대하신 주께 찬송을 올리는 것입니다.

'저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그것을 끊임없이 행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지체하지 마소서(참. 40:17)라는 간구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창조주께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되 그것을 우리에게서 끊임없이 행해 주시기를 바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위대하신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70편은 바로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하게 하기 위한 시입니다.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우리에게는 우리 주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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