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아무개 2020. 2. 21. 21:06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그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

하나님께 아뢰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말미암아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리이다 할지어다 (셀라) (시 66:1-4)

 

다윗은 그의 나라 유다(이스라엘)의 구원을 보고 온 땅(모든 나라들)이 주의 이름을 찬송하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왜 그래야 합니까?

무려 삼천여 년 전, 그 오랜 옛적에 저 먼 나라 이스라엘에 베풀어진 구원이 현재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하신 이유는 그때의 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구원을 행하시는 주님이시라는 사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런 구원을 주께서 행하셨음을 온 땅이 알 수 있게 해주셔서 마침내 그의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시려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걸어서 강을 건너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였도다

그가 그의 능력으로 영원히 다스리시며 그의 눈으로 나라들을 살피시나니 거역하는 자들은 교만하지 말지어다 (셀라) (6-7)

크고 기이한 이적과(6), 또한 섭리로 영원히 다스리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7).

그러한 하나님의 행적은 낡아지는 법이 없기에 주께서 그 옛날 이스라엘에 행하신 놀라운 일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찬송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원하신 행위가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씀께서 구원을 영원토록 행하십니다.

과거에 행하셨던 일을 지금도 행하시며, 앞으로도 그 구원의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영원하신 주님께서 구약시대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들은 영원한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과거의 하나님께서 지금도 그 하나님이시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 실제로 구원을 행하고 계십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골 1:21-23a)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 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환난)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연단)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구원)

 

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주께 갚으리니

이는 내 입술이 낸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 (셀라) (8-15)

번제는 희생 제물을 불로 태워서 올리는 방식인데요, 감사와 찬송에 번제가 동반된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죄로 더럽혀진 감사와 찬송을 그대로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 희생 제물의 번제는 결코 헌금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죄의 대가성 희생제물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주께서는 제사(זֶבַח)‘희생제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עֹלָה)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שָׁבַר)/샤바르/‘깨뜨리다, 부수다, 산산조각내다’ 심령이라"(시 51:16-18)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욥 35:7)

사람의 의로는 어떤 것도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덮혀진 성도의 찬송과 감사의 예배여야 합니다. 

참으로 구약 시대의 희생제물은 그 예표하는 뜻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지,

그 자체의 가치나 맛이나 향기를 열납하신 것인 아닙니다. 그 피와 기름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생명의 핵심부분입니다. 그것을 바침은 나의 죄값으로 그 동물을 대신 죽여서 바치는 게 아니고

나의 하나뿐인 생명, 곧 나의 전부를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제물 자체의 가치로 드리는 것이 아니니, 오직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대속을 예표하였기에 유효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헌금과 예물을 드림은 눈에 보이는 그것 재물 자체가 많고 크고 좋은 거라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게 아니고,

그 드리는 자의 보이지 않는 마음(생각)이 헌신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열납하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16-20)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의 충만하신 역사는 밖으로 행위의 정결함을 나타나게 하실 뿐 아니라 그 전에 마음속(머릿속)의 생각까지도 새롭게 하셔서 범죄해보려는 경향마저도 없게 하십니다. 

내가 선을 행하고, 뭔가를 잘하려고 해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원합니다. 그게 잘하는 것 같고 좋아보여도 결국에는 교만으로 가서 죄짓게 되는 길입니다. 

오직 주만 바라라는 말씀은, 말 그대로 정말로 그러라는 뜻입니다. 내 행실을 바르게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지면 결국 주님의 책망밖에 들을 것이 없습니다. 

참으로 이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자꾸 규칙들을 만들어내지 마십시오. 사람에게서는 선한 것이 아무것도 전혀 절대로 나올 수가 없고 오직 주께서 해주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 1:16)

죄악에 죄악을 더하려고 하지 말고 오직 은혜 위에 은혜를 생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