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아무개 2020. 2. 17. 10:58

마카비 전쟁(167-142 BC) 이후로 유대인들 사이에서 성전이 아닌 회당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135 BC) 유대교의 종파가 바리새파입니다.

회당의 율법선생인 그들은 율법을 문자 그대로 준수하는데 철저했고, 이내 유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 당파로 발전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절에도 바리새인들은 유대 사회의 가장 큰 세력이었습니다. 주로 산헤드린 공회 사람들이 많았고 경건한 지도자로 존경받았습니다.

그들은 율법 조문과 율법 선생들에게 물려받은 전통('장로들의 전통', 참. 마 15장, 막 7장)을 일상생활에까지 엄격하게 지키고자 한 신앙의 열심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선지자 다니엘은 그들이 추구한 경건한 인물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왕의 음식과 포도주라도 세상 것이라며 마다했었죠. 

그들은 율법의 의식상(제사법/의식법)의 부정한 것은 무엇이든지 엄격하게 피했고, 특히 먹지 말아야 할 음식과 안식일 준수 등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율법은 613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데, 248개는 긍정적이며 365개는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많은 율법적인 규정들이 추가되어 안식일에 관련된 조항만 해도 39개나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눅 11:46)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마 10:17)

회당은 성전이 아니라 지금으로 말하면 교회 건물이고 예배당입니다.

신약성경에서 회당(συναγωγή)/쉬나고게/'집회, 회중, 회당'은 교회(ἐκκλησία)/에클레시아/'집회, 회중, 교회'와 달리, 대부분 집회나 회중 자체가 아닌 예배의 장소로써 '교회당'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로마 제국에 저항한 폭동을 티투스 장군의 군대가 진압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예루살렘 성벽도 무너졌습니다(AD 70).

성전이 중심이었던 유대 종교는 그 후로 아예 성전이 없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지배 세력을 지지하며 권력에 빌붙었던 사두개파(제사장 집단)는 성전이 무너지면서 함께 소멸했고,

무력항쟁을 추구하던 셀롯파(열심당)도 이스라엘의 패망으로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끝끝내 남게 된 바리새파는 예루살렘(성전)을 떠나서도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믿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당(성전이 아님)을 더욱 많이 짓기 시작했고 그곳들이 점차 유대인 사회에서 생활의 중심이 됩니다.

그렇게 성전이 아닌 교회당 중심의 유대교가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예언대로 사람들(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과 같은 유대인이라도 기독교인이면 그들의 회당에서 내쫓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없는 고로 순전한 믿음은 없고 그릇된 신념만 품게 됩니다.

둘째, 그 그릇된 신념 때문입니다. 그러니 악한 짓을 하면서도 잘하는 줄 알고서 시기나 적대감이나 이득이나 교권 등등 그런 것들에 끌려 행동하는 것입니다.

유대교와 중세 교회의 부패는 대다수 교역자들의 무식이 큰 원인이었습니다.

청년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종교적 열심만으로 곧바로 사역에 나서니 그것이 교회에 재앙을 가져왔습니다.

복음이 전해지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열심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진리에 대한 무식은 참된 믿음이 없는 것이니, 곧 모든 과오의 근원입니다.

그들을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 (8b)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9)

참으로 구약과 신약의 계시인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인류 구원의 역사(구속사)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최소한입니다. 생명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고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일에 쓰임받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가르침이 성경에 있습니다.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10a)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 때문에 즐거워하고 주님께로 피할 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10b)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우리의 자랑은 다른 어떤 것도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렘 9:23)

오직 복음(주님)과, 주께서 행하신 일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롬 15:17)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고후 11:10)

내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막힘 없이 자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