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기적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의 무리가 전투에 능한 집단이긴 하나 백성을 핍박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쫓기는 와중에도 적국인 블레셋에 약탈당한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군을 도륙하고,
아예 뒤를 쫓아가서 그들의 가축을 빼앗아 끌어오고, 그일라 사람들을 구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 중에 다윗은 구함을 받은 그들이 도리어 다윗을 사울에게 넘길 것이라는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황급히 그곳을 떠나 십 광야로 향합니다. 십 사람들은 다윗과 같은 유다 지파였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을 적대하여 사울에게 넘기지는 않으리란 판단하에 십 광야의 산지에 몸을 숨깁니다(참. 삼상 23:14-15).
사울과 그의 수많은 군사들은 매일매일 다윗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다윗을 찾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습니다(삼상 23:14b).
그러나 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로 가서 사울에게 제보합니다.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같은 지파 사람들인데도 사울 왕에게 스스로 찾아가서 다윗이 어디에 숨었는지 알려 주었을 뿐 아니라,
다윗을 잡으러 군사들을 이끌고 오라고 청하고, 다윗을 그의 손에 붙이겠다고 약속까지 합니다(참. 삼상 23:19-20).
사울이 그들에게 다윗을 봤냐고 묻지도 않았고 위협하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물론 그게 그들의 입장에서는 죄악이 아닙니다. 왜 그들이 자신들에게는 죄가 없다고 생각할까요?
그들의 나라는 이스라엘이고, 그들의 왕은 사울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같은 지파 출신이고 훌륭한 사람이지만, 나라의 군대에 쫓기는 불법적인 전투집단의 수괴일 뿐이었으니까요.
오늘날로 말하자면 조직폭력배 두목쯤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고,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기분좋게 말합니다.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노라"(삼상 23:21)
그의 입술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으나,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멀리 떠나 있습니다.
이제 다윗은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사울은 금방이라도 다윗을 잡아서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즉시 다윗을 잡으러 가지 않고는 더 확실하게 일을 끝내기 위해 십 사람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그 틈에 다윗은 또 죽음을 피했습니다.
아슬아슬했지만 다윗은 마온 황무지로 도망했고(삼상 23:24) 그때 이 시 54편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낯선 자들(십 사람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사울의 군대)이 나의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셀라)"(시 54:1-3)
3절에서 다윗은 십 사람들을 낯선 자(זוּר)/주르/'(동사) 모르는 사람이다, (분사) 외인, 외국인, 창녀, 불법적인'들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지파 사람들, 어려서부터 함께 지내며 보아 온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 같이 되었습니다.
포악한 자들은 사울의 군대를 가리키겠지요.
그들이 다윗의 목숨을 찾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보호 아래 맡기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시 54:4)
하지만 상황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윗의 생명은 경각에 달렸고, 사울은 기쁨에 들떠 있었습니다. 다 쫓아왔습니다.
그런데 산이 그들을 가로막는 가리개가 되었습니다. 쫓는 사울과 쫓기는 다윗 사이에 산이 하나 있습니다.
사울과 그의 군대는 산 이쪽으로 가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산 저쪽으로 갔습니다.
무슨 일이냐면, 산 하나에서 쫓고 쫓기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산으로 가리움을 받은 다윗은 산새같이 산으로 날아다니며 하나님의 그늘에서 숨을 곳을 찾았습니다(시 11:1).
"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시 54:7a)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셔서 성도를 구원해주십니다.
주께서는 위에서 다윗에게 세 차례 이상 기적을 행하시어 구원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펼치신 오른손은 눈에 보이지가 않습니다.
두 번째 기적은, 사울의 마음을 움직이신 일입니다. 곧장 추격했으면 다윗을 죽였을 것이나 그러지 않게 하셨습니다.
사울 입장에서는 그게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한 것이지만요.
세 번째로는, 턱밑까지 쫓겼는데 산이 있습니다. 산은 그냥 거기 있었을 뿐이지만 다윗의 생명을 지켜 준 방패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외에도 더 있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위기에 처한 다윗의 영혼을 새롭게 기쁨이 넘치도록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진정한 기적은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실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왜 기적이냐면 사람의 힘과 능력과 의지로는 결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괴롭거나 슬프거나 두려운 마음이 들 때, 내 의지로 마음이 기뻐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빌 4:4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사람이 스스로 기뻐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기뻐하라는 것입니까?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고 싶어도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충만히 내 안에 임하시게 한다는 말입니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의지해야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기뻐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평안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참. 빌 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