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 보이는 것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시인은
자기자신을 믿고 자기의 말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의 죽음 이후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14a)
악인들의 목자는 사망이라서 저들이 사망의 지배하에 놓여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도인 우리들의 목자는 말씀이신 하나님이시므로 교회를 참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7)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14b)
악인들이 세력을 떨친 어두운 밤이 지나고, 마침내 내세의 아침이 오면
저들의 처지는 어둠 속에서 고생했던 성도들과 아주 뒤바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을 통해' 현세를 넘어서 내세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의 극치에 이르러 뒤집힐 때가 아니라면,
성도의 아름다움과 그들에게 있을 참된 안식과 같은 은혜가 언제 나타나겠습니까?
자기 아름다움을 풍성히 누리는 악인들을 삼키는 파멸의 웅덩이가 이 땅의 어디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 땅 위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치 꿈꾸듯 한 날의 행복을 누리고 나서, 그들은 영원하고 끝없는 사망에 처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점점 더 죽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져 참 생명의 부활 소망에서 끊어지고 마는 것입니다."(칼빈)
반대로 오직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사람들만은 그가 별세할 때 하늘 보좌에 계신 주께서 그들의 영혼을 영접하십니다.
구약 시대에 에녹이나 엘리야를 눈에 보이도록 하늘로 끌어올리신 것은..
바로 땅에서 죽음을 맞은 성도들의 영혼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한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시 49:15)
그러므로 “어떤 이가 부자가 되어 그 집의 영화가 커질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16)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땅의 복은 하늘에서의 복에 비하면 가치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죽을 때에 땅 위의 아무것도 가져갈 것이 없으며, 그가 누리는 영화도 그를 따라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자기 영혼을 위해 축복하고, 선행으로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다 해도,
결국은 자기 조상에게로 돌아가서 영원토록 빛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고귀하지만,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면 멸망할 짐승과 같을 뿐입니다(17-20).
이 말씀을 설교할 때에 스펄젼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개들이 뼈다귀를 먹게 놔두고, 돼지들이 찌꺼기를 먹게 두어라.”
세상 물질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가리킵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고 결국에는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반면에 성도의 삶에는 눈에 보이는 비참이 있고, 그걸 통과하는 동안에는 마음도 심히 괴롭습니다.
그럴 때에는 땅 위의 어디에서도 의지할 피난처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집이나 예배당이 피난처가 될까요? 아마 거기도 전쟁터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럴 때라도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피난처가 있습니다. 언제나 저희를 주님께 의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