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 하나님의 은총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임하셔서 그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거룩한 전쟁을 치르십니다.
인간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사용하셔서..
의로우신 하나님의 뜻대로, 계획하신 모든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성과 의지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그의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두운 이성과, 악한 의지와 싸우면서 일하시고,
우리는 자유의지로 주님을 믿고, 주님의 몸 된 교회로서 하나님의 이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윗은 주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새 노래를 지어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다”(3a)
새 노래를 지어 찬양한 사람은 다윗이었지만, 그를 구원하시어 새 노래에 들어갈 내용을 주시고 그 내용으로 찬양하게 하신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노래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나온 것처럼 생각하여 우리 스스로가 능력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시편의 다윗과 같이, 우리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고 믿는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고후 3:5).
이 믿음은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택하심에 의해 그분의 백성이 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모든 능력과 신령한 믿음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참. 고전 12).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만이 하늘에서 온 이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믿음의 반석 위에 바로 서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 악한 세대와 같이 눈에 보이는 표적만을 구합니다.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눅 11:29)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요나를 통해 악독한 니느웨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예정하신 일이었습니다(참. 마 12:40).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표적을 구하는 이들에게 그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나보다 더 큰 분이신 예수님께, 전적으로 타락한 그분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십자가의 길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니느웨가 요나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서 믿음으로 우리의 죄를 회개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2)
여기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라는 구문의 뜻은 ‘파멸의 구덩이와 진흙 수렁(진창)’입니다.
그 말은 죽은 자들이 가는 스올(음부)의 가장 낮은 곳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되는 말입니다.
다윗이 실제로 지옥에 들어가 보았을 리가 없죠. 당시에 자기가 처한 상황과 현실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그를 그 진흙 구덩이에서 끌어올리시기 위해서는 친히 그 깊은 곳으로 내려오지 않으시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려오셨습니다. 그 사실을 다윗에게는 미리 말씀해주시고 성령으로 깨닫게 해주셨던 것입니다(참. 6-7).
하나님의 의와 진리 때문에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 곧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까지 낮아지시는 그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우리의 죗값이 치러질 수가 없었습니다.
제사나, 예물이나, 번제나, 속죄제로도 될 수가 없습니다.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6)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않으심은 그의 삶이 담기지 않은 형식적인 행위로써의 종교의식과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또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않으신다고 하신 것은, 사람의 죄와 악행들을 대신할 제물 따위는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째서 그러셨을까요? 그 당시는 아직 구약 시대인데요?
왜냐하면 번제와 속죄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예표하는 모형이요 그림자였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6-7).
다윗의 간증 도중에 예수님의 말씀이 나타납니다.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7)
"보십시오, 내가 왔습니다. 두루마리 책에 나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성령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관한 말씀이 히브리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참. 히 10:5-10)
참으로 시 40:6-7의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기록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말씀대로 다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으로 내려오신 주께서 친히 저주의 나무에 달려 숨지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이 가리키는 온전한 희생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라 그는 다시 살아나셔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이기셨고,
다시 하늘에 오르시어 영 단번의 제사를 완성하신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그리고 유일한 중보자로서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토록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되게 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중보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께서 하늘에서 계속해서 아버지께 간구하시며,
우리는 지금도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그분의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