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 땅을 차지할 것이다
1-7절의 말씀은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내용입니다.
1절에서 "불평하지(חָרָה)/하라/'화내다, 뜨겁게 되다' 말며 투기하지(קָנָא)/카나/'시기하다, 투기하다, 질투하다' 말지어다."에 나오는 이 동사들의 성내고 열을 내고 시기하는 이런 감정들은 내 안의 욕심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악행하면서도 잘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열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 감정이 아닙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하여 이 땅에서도 하늘의 복과 땅의 복락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고, 이후에도 하늘에서 살고, 또 주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도 원하는 그것은 성령 하나님의 충만함입니다. 그런데 나의 욕심은 그것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상태는 이와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전인 나의 몸과 마음을 하늘의 것이 아니라, 땅의 것들로 채우려 하는 것' 욕심은 이처럼 마음속에 우상을 들여다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마음에 우상을 모셔놓고도 알지 못하면 그것이 가장 비참한 것이라고 어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사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하겠다고 기껏 계획한 것은 실로 허황된 일이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서 사실 집을 짓겠다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영이시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땅에다 지은 건물에 사실 이유가 없습니다.
참으로 유치하고 어리석은 발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생각한 다윗의 마음을, 참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그 마음을 주께서는 기뻐하시고 받아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 18:17)
왜냐하면 다른 어떤 것에 그의 정신이 팔려 있지 않았고, 마음이 오로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향하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그런 성도의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미 그의 손에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에, - 물론 거기에는 억울한 사람들의 피도 섞여 있었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다윗은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금과 은과 온갖 보석과 보화들, 세상에서 귀하다고 하는 것들을 다 끌어다 모았습니다. 성전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 안에 있던 보화들, 다윗 대에서부터 가장 번영한 솔로몬의 시대까지 모았던 그 엄청난 보물들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치세에 불과 오 년만에(약 925 BC), 애굽의 바로 시삭에 의해 싸그리 탈취당하고 맙니다(왕상 14:25-26).
그리고 훗날 예루살렘은 결국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함락됩니다. 이때 성전이 파괴되었고, 바벨론은 또 성전의 기물들과 두 개의 대형 놋 기둥마저 가져가 버렸습니다. 결국 현재 그 성전은 흔적조차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다윗의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은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성읍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을 상징하며, 그 성전은 성령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안에 머무르실 것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성전은 무엇으로 채워져야 했을까요? 당연히 처음부터 땅의 보화들이 아니라, 하늘의 보배들로 채워져야 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어떤 것도 아닌 하나님의 선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오직 하나님을 모실 때, 주님께서 그것을 참으로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속마음을 부패하고 타락한 자기 소욕을 따라 세상에 속한 것으로 채우면 바로 그것이 성전에 우상을 들여놓는 죄악입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11) 하였습니다. ‘온유한 자’는 단순히 성격만 온순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9), ‘주의 복을 받은 자들’(22), ‘의인’(29)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땅을 차지하게 될 그들은 주님만을 소망하고 기대하는 성도입니다.
34절에서도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그의 심령은 늘 즐겁고 평안합니다.
성도가 차지하게 될 그 땅은 영적인 의미로써,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늘에서 얻게 될 기업(그리스도)을 얻는 것을 의미하기에,
사실 우리가 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그로 인해 땅에서도 복을 받고 또 하늘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주님의 종이라고 세상에서 복(그리스도)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받았거나 앞으로 받게 될 다른 이런저런 것들에 취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면 불과 5년 만에 그랬듯이 이 성전(나)의 창고에 싸인 보물들을 싹 다 세상의 우상에 빼앗겨버릴 것이고, 그 헛된 우상들도 없어져 버릴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주께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그저 세상 군왕이나 또다른 온갖 더러운 우상들의 노예로 살다가 헛되이 멸망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솔로몬이 말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한 것이 바로 이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내게 어떤 과분한 것들이 내려져 큰 부귀와 명예와 권력을 얻게 된다 해도, 그것들은 모두다 버려져야 할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바라야 할 하나님의 상급은 오직 주님이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그분 아닌 다른 것을 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예배하는 자는, 바라는 것을 주시는 분보다 그가 바라는 그것을 더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경건한 성도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가장 큰 보배는 주님이시며,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상급이 바로 그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반드시 보이지 않는 하늘에 계신 주님만을 향하고, 주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하며, 그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를 소원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