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아무개 2023. 7. 12. 10:09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1:1-2)

 

제사(예배)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일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예배를 올린 최초의 기록은 가인과 아벨이 예물을 드린 일이었지요(창 4장). 

오늘 본문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제사 제도는 예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이란 비유와 상징으로 영적·실제적인 사실을들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 성례전이라고 하죠? 거룩한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말씀인 신약 성경에는 이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9:6-1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5:2)


누가복음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외양간에서 탄생하셨고, 그것은 예수님의 비하, 즉 우리를 위해 지극히 낮아지셨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완전한 사람으로 계셨고 택하신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율법에 기록된 저주의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으로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성취하심으로써 완전한 개혁을 이루셨기에 구약의 제사법과 의식법은 폐기되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새 언약 안에서요.

예를 들면, 본문 3절도 그리스도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일을 예표하고 있으며 다른 어떤 의미도 그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처음에 회막 곧 성막이 나오는데, 이 또한 교회의 모형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집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과 교회의 교제를 표상하며,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을 의미하는데 그 장소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들이지요.

이 땅의 역사 전체는 곧 하나님의 구속사(계시사)입니다. 인류 역사의 모든 시기가 교회의 시대라는 뜻입니다. 아담서부터 예수님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영원 중에 주의 택하심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모두 다 한 교회 안에 있습니다. 이를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합니다.

하지만 '보이는 교회'인 우리들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어떤 다른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의 교회만이 있습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주의 약속을 믿는 언약 백성인 교회를 보존하시고, 인도하시고, 더하여 주시고, 교회에 영광-성령님을 각 사람마다 내려 주시고, 그렇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불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한 하나님을 믿듯이,
처음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고 또 세상 끝 날에도 있을 하나의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앙으로 예배하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의 하나의 교제, 곧 회중을 믿는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16조)

 

사람들을 믿는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의 몸 된 하나의 교회라는 사실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한 신부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시므로 그의 몸인 교회도 하나입니다. 그것이 본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눈에 보이는 썩어질 것들에서 끌어 올리셔서 하늘의 썩지 않을 유업을 잇게 하십니다.

교회는 모든 나라, 모든 국민, 민족, 족속,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언어가 다른 모든 이들을 포함합니다. 유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오직 한 분이신 그리스도, 하나의 신앙, 한 번의 세례.

교회는 신앙이 있는 부모와 자녀들이고, 또한 이미 세상을 떠나 하늘에 있는 영혼들도 있습니다(16-17).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신앙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54). 결코 예배당 건물이 거룩한 것이 아니고, 주님의 몸인 우리가 거룩해진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5-26)

여기서 교회도 물론 건물을 의미하지 않고 믿는 사람의 단체를 뜻합니다. 성경 어디에 교회란 말이 건물을 의미했습니까? 교회에서 가르쳤다고 했는데, 그것은 교회와 함께 있으면서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두세 사람이 모여도 그 가운데 있겠다고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따로 혼자 있는 신자는 교회도 아니라는 그런 뜻이 아니고, 각자 말씀을 연구하고 다시 모여서 경배드리는 은혜가 특별하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곧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각 신자와 단체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믿고 고백하는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당이나 다른 어떤 시설이 없어도 하나님과 신자가 경건한 교제로 모이면 이는 참된 교회입니다.

신자들이 흔히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런 표현은 삼가야 합니다. 성전은 구약시대에 예루살렘에만 오직 하나 있었고, 그 성전의 모든 양식은 사람의 생각대로 설계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단 하나의 성전을 중시하신 까닭은 그것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참 교회의 예표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이 자신의 몸을 가리키는 것이라 가르쳐주셨습니다. 따라서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르는 것은 신자 자신의 성전된 거룩한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고, 또한 거룩(경건)과 헌신보다 물체 봉헌을 더 중요시하는 과오를 범하는 것입니다.

배교자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의 보좌를 탈취하고서 예배당 건물과 그 안에 있는 기구들을 거룩한 것처럼 보이도록 꾸며냈습니다

건물이나 물건들을 거룩하다 말하는 그것은 참으로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신 우상으로 바꾸는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니 곧 참된 교회를 위하여 하늘에 예비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영원 중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서는 그 하나의 교회로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덕을 선포하게 하시려고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임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구약의 제사와 제사장 제도 등의 의식법과 조문들은 모두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들이기에 이제는 없어진 것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교회, 즉 우리들과 우리 공동체의 본질을 성경대로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율법을 완성하신 교회의 왕께서 그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율법의 짐/율법 준수)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나는 ‘마음’이 겸손하고 비천하니(그러나 그 마음에 구원하는 힘이 내포됨),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복음의 믿음으로 행함)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목숨(영혼)을 위한 안식을 발견할 것이다.
이는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다.
(직, 마 11:28-30)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존재이며, 예배는 사람의 모든 활동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만 그것은 예배의 한 부분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사람에게 미치는 부분은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성례전적 재가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기도보다도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인 것이다. 따라서 예배를 섬김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